일본의 오늘

침몰 징용자 귀국선 유해발굴 실패…우키시마호 유족들 “포기 안할 것”

서의동 2012. 5. 31. 10:23

67년 동안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이번에도 풀지 못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1945년 해방 직후 일제 징용자를 태우고 귀국길에 올랐다가 침몰한 ‘우키시마(浮島)호’ 사고의 희생자 유족들이 일본 교토(京都) 마이즈루(舞鶴)항 부근 앞바다에서 29일부터 이틀간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다.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족회(회장 한영용)는 잠수부 2명을 동원해 최초 침몰장소와 수년 뒤 인양된 장소 두 곳을 뒤졌지만 바닥에 두껍게 쌓인 펄 때문에 유해나 선체 잔해를 찾는 데 실패했다. 

해안에서 300m 떨어진 최초 침몰지점에는 펄이 3m 두께로 쌓여 있어 중장비를 동원해 파내지 않는 한 확인이 어렵다고 현장 관계자가 전했다. 67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두꺼워진 퇴적층이 작업을 방해한 것이다. 또 일본 정부가 나중에 선박을 건져 정박시킨 해안에서 80m 지점 수중에는 이후 해안도로 건설 당시 발파작업으로 깨진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발굴에 이르기까지도 어려움이 많았다. 유족들은 일본 정부가 발굴 허가를 내주지 않자 폭침장소에 수중위령비를 세우겠다는 명목을 내세워 간신히 허가를 받아냈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발굴현장 주변을 지켜보면서 작업팀이 지정된 장소를 벗어나면 제지했고, 어떤 날은 폭우가 쏟아져 작업에 애를 먹기도 했다.

우키시마호(4730t)는 1945년 광복 직후 귀국하려는 재일 한국인들을 태웠던 일본 해군 수송선이다. 1945년 8월22일 아오모리(靑森)현을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마이즈루항에 기항하려던 중 선체 밑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다. 일본은 우키시마호가 기뢰를 건드려 폭발해 침몰하면서 승선자 3700여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사고 후 수년간 선체를 인양하거나 유해를 회수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해 3000명 이상 숨졌다며 1992년 일본 정부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2004년 패소했다. 한국 정부의 2005∼2010년 조사에서도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 

한영용 회장은 “이번으로 끝나지 않고 추가 발굴을 시도할 계획이지만 준설에 가까운 대규모 작업이 필요해 민간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다”면서 “한·일 양국 정부가 공동조사단을 만들어 유골과 유품을 찾는 데 협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