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데모 데뷰'하는 일본인들

서의동 2012. 7. 2. 13:49


1일 도쿄 신주쿠역 알타스튜디오 부근에 설치된 시위 지휘차량 '원전 그만둬라, 노다 물러나라'구호가 적혀있다. /by 서의동


일본 도쿄시내 총리관저 앞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는 ‘반(反)원전’ 시위가 갈수록 대규모화되고 있습니다. 


총리관저는 우리식으로 따지면 청와대인데 도쿄는 평지라서 총리관저라고 해도 청와대처럼 요새처럼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정부청사가 밀집한 가스미가세키와 국회의사당 중간쯤에 위치해 있습니다. 일본 TV카메라가 헬기를 타고 찍은 장면을 보니 시위대가 100m 이내까지도 근접할 수 있습니다. 


6월29일에는 이곳 관저부근에서 지난해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이후 최대 규모의 ‘반원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오후 6시부터 20만명(주최측 추산)의 참가자가 나가타초(永田町) 총리관저 앞에서 정부청사가 몰린 가스미가세키(霞が關) 앞 일대 1㎞에 이르는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원전 재가동 반대’를 외쳤습니다.


29일 시위사진을 실은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 1면


젖먹이 아이를 안은 엄마, 퇴근길 회사원, 짙은 화장을 한 젊은여성 등이 ‘원전 필요없다’, ‘피폭국으로서 부끄러움을 알라’ 등의 구호가 적인 손팻말을 들고 자연스럽게 대열을 이뤘습니다. 참가자수가 너무 많다 보니 본래 인도에서 하기로 돼 있는 시위가 자연스럽게 차도를 점거하는 양상으로 번졌습니다.


시위규모에 당황한 경찰이 관저 앞에 수백명의 기동대를 배치하기도 했지만 평화시위로 마무리됐습니다. 어쨌건 일본에서 이처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은 십수년만에 처음있는 일입니다. 경찰은 이날 시위 참가자를 2만명이 조금 못되는 것으로 추산했지만, 주최측은 20만명으로 발표했습니다. 진짜 참가자수는 두 발표를 합해서 둘로 나나눈 정도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우리나라나 일본이나 경찰의 축소발표 경향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수도권 반원전 연합’이 주도하고 있는 금요시위는 지난 3월29일 시작돼 매주 열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참가자가 300명 정도였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불어나 정부가 원전재가동 방침을 결정하기 전날인 지난달 15일에는 1만명을 넘어섰고, 후쿠이(福井)현 오이(大飯)원전 재가동을 정식 결정한 직후인 22일에는 4만5000명(주최측 추산)으로 불어났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시위소식을 접하고 참가합니다. 특정 정당이나 노동조합이 참가자를 조직적으로 동원하지도 않거니와 행진을 벌이거나 폭력화하는 것도 아니어서 퇴근길 회사원, 아이 엄마 등도 안심하고 참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시민들이 부담없이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세가 불어날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날 시위에 6살~15살의 아이 3명을 데리고 참가한 다나카 사토미씨(44·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는 “인터넷을 통해 평화적인 시위임을 확인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마이니치신문의 취재에 밝혔습니다. 


반원전 시위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평소 시위보도에 소극적이던 일본 언론들도 시위를 주요뉴스로 다루고 있습니다. TV아사히가 뉴스프로인 <보도스테이션>에서 22일 시위를 10분여 특집으로 다뤘고, NHK도 29일 오이원전 재가동 소식을 톱뉴스로 전하면서 관저앞 시위 소식을 내보냈습니다. 

 

신주쿠 시위 지휘차량 모습/by 서의동

 

반원전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지난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데도 정부가 아랑곳없이 재가동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V뉴스의 인터뷰에 응한 한 회사원은 "정부가 시민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대기업의 요구대로만 정부가 움직인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본래 '시위'가 터부시돼 왔습니다. 1970년대 학생운동이 연합적군파의 아사마산장 린치사건 등으로 대표되듯 과격화된 탓입니다. 학생운동이 여론의 외면을 받으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금기시돼왔던 것이죠. 70년대 이후 고도성장으로 일본사회가 풍요로움을 향유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마치 '오타쿠'처럼 경원시돼 왔던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런 금기가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 회사원이 인터넷에서 알게된 이들 몇명과 만나 시위를 조직하기도 합니다. 경찰서 집회신고나 인터넷을 통한 집회공고 등의 역할을 서로 나누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처음 집회에 참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본에선 이를 '데모 데뷰'라고도 합니다.(일본에선 시위 대신 '데몬스트레이션'을 줄인 '데모'라는 말을 씁니다)이렇게 보면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본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실감케 합니다. 


지난달 22일부터 시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는 한 여성(41·결혼 카운셀러)은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반대는 다툼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시위 참가를 나쁘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우리들이 무관심하니까 정치권이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시위에 나오게 됐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선 금요시위를 ‘수국(일본명 아지사이)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작은 꽃망울이 모여 큰 봉오리를 이루는 수국처럼 시민 개개인의 힘은 작지만 모여서 큰 목소리를 내면 나라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수국은 일본의 여름철에 흔히 볼 수 있는 꽃으로 오타구에 있는 우리집 주변에도 볼 수 있습니다

 

재가동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오이원전 3호기를 1일 저녁부터 돌리기 시작하자 이날 도쿄 신주쿠에서는 ‘원전을 멈춰라, 노다 퇴진하라(原発やめろ、野田やめろ)’라는 슬로건을 내건 시위도 벌어졌습니다. 원전사고 이후 총리퇴진을 내건 시위는 처음있는 일입니다. 


이날 도쿄에 비가 와서 다소 김이 샜지만 JR 신주쿠 히가시구치역 앞 알타스튜디오 부근에는 8000명이 모여 기세를 올렸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작가겸 사회운동가인 아마미야 카린을 만나 물어봤더니 "노다 퇴진 구호는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주최측은 이날 시위 취지문에서 “‘국민생활을 지키기 위해 원전재가동을 결정했다’는 노다 총리의 말은 기만”이라며 “국민 다수의 뜻을 무시할 뿐 아니라 (원전재가동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노다총리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