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일본 샤프 '종신고용 100년 전통' 깨진다

서의동 2012. 7. 26. 14:36

“종업원을 자르느니 차라리 회사문을 닫겠다.”

 

1950년 연합군총사령부(GHQ) 통치 하의 일본. 가전업체 샤프는 군정의 긴축조치에 따른‘닷지불황’의 여파로 경영난이 심화됐다. 거래은행들은 “회사문을 닫지 않으려면 210명의 인원을 삭감해야 한다”며 창업자 겸 사장인 하야카와 도쿠지(早川德次)를 압박했다. 


시각장애인 전용공장을 설립할 정도로 ‘기업의 사회봉사’를 강조해온 하야카와에게 종업원 감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인원정리로 회사를 유지할 정도라면 회사를 해산하는 게 낫다”는 뜻을 은행에 전했다. 이 소식이 사내에 전해지자 “그래도 회사는 살려야 한다”며 210명가량이 자발적으로 퇴직원을 냈다. 이 사건 이후 샤프에는 종업원 고용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풍이 정착됐으며, 일본형 종신고용제의 대표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 샤프가 1912년 창업 이래 처음으로 대대적인 인원정리에 나서기로 했다. 엔화가치 급등과 한국세에 따른 실적악화로 고용유지의 ‘백년전통’을 스스로 허물게 된 것이다. 

 


샤프는 2001년 가전업체 불황때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가 1만3000명을 삭감했을 때도,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주식시장 상장이래 첫 적자를 냈을 때도 창업자의 사훈에 따라 고용만은 유지해왔다. 하지만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 3760억엔(약 5조5000억원)의 사상최대 규모의 적자를 낸 데 이어 2012 회계연도 4∼6월기에도 1000억엔(약 1조46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등 경영악화가 지속됐다. 


엔화가치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주력제품인 LCD 패널 등에서 삼성 등 한국세에 지속적으로 밀리자 사내에 위기감도 고조됐다.

 

샤프는 지난 3월 주력제품인 LCD 패널분야 제휴를 위해 샤프전자 주식 10%를 대만 홍하이(鴻海)그룹에 넘기는 등 자구노력을 해왔다. 대만기업에 최대주주 자리를 넘기는 ‘수모’를 감수하면서도 고용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지난 4월 실적발표 때 종업원 2000명을 성장사업 분야로 배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금융기관들에서는 “고용유지의 사풍에 매달릴 상황이 아니다”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성역’을 허물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도쿄신문은 “국내외 종업원 6만4000명 가운데 수천명 규모가 감원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912년 ‘하야카와 전기공업’으로 시작한 샤프는 1915년 하야카와 사장이 ‘샤프펜슬’을 발명해 대성공을 거둔 것을 계기로 사명을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으로 도쿄공장이 소실되자 오사카(大阪)으로 본사를 옮긴 뒤 일본의 대표적인 가전업체로 성장했으며 세계최초로 탁상용 전자계산기, LCD패널, 카메라폰을 개발하는 등 독창성이 강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