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오판했다. 지난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 것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다. 후진타오가 경고를 한 다음날 노다 총리는 각료회의를 열어 센카쿠 열도 3개 섬의 국유화를 결정했다. 외무성의 일부 간부들이 “국유화는 조금 기다렸다 하자”며 충고했지만 노다 총리는 듣지 않았다. 국가주석의 체면이 구겨진 중국은 무섭게 화를 내고 있고,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일본은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노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센카쿠열도 도쿄조사단/AFP연합
일본의 외교라인은 중국의 본심을 읽는 데 실패했다. 이토추(伊藤忠)상사 회장을 지낸 친중파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주중 일본대사를 ‘이지메’할 때부터 대중국 라인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듯하다. 관료들이 가야할 자리에 상사맨이 앉아 있는 것을 못마땅히 여기던 노다 내각의 외교라인은 니와 대사가 외신 인터뷰에서 “일본정부의 센카쿠 국유화가 중·일관계에 엄중한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한 충고를 문제삼아 끝내 경질해버렸다. 하지만 니와의 경고는 석달 뒤 현실이 됐다. 센카쿠 국유화 시점도 하필 중국인들에게 ‘국치일’인 만주사변 발발일(18일) 일주일 전이었다. 외교관료들이 무능하거나, 노다 정권에 대해 사보타주를 벌이고 있든가 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근시안적인 결정이다.
과거에도 일본 외교의 상황판단은 ‘아마추어’였고, 국가를 파탄시켰다. 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1년 7월. 일본은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뒤 친독 비시정권이 수립되자 중국 국민당군의 보급로 차단을 위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인 베트남 남부에 진주했다. 미국이 석유 금수조치에 나설 우려가 있다는 신중론이 많았지만 군부는 “프랑스 정부가 용인하는 데 제3자인 미국이 나설 리 없다”며 강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은 대일 석유 전면금지 조치를 발동했고 견딜 수 없게 된 일본은 진주만 공격을 강행하며 자멸의 길로 빠져 들어갔다.
국제관계에서 ‘외교의 껍질’을 벗겨내면 군사 대결이 남는다. 센카쿠 열도에 만약 양국군이 출동하게 된다면? 중국이 군함을 출동시키면 일본도 호위함을 보내고, 중국 전투기가 센카쿠 상공에 출동하면 일본도 F-15 전투기로 맞설 것이다. 대치과정에서 국지전이 일어난다면 전투기와 전자장비, 공중조기경계기 능력 등에서 우위인 일본이 초반 승기를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더 큰 보복을 부를 것이고, 중국이 장거리미사일로 일본 본토를 공격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일본의 유일한 버팀목인 미국이 중국과 대신 싸워줄 것인가. 무인도 하나 때문에 미국이 최대 시장인 중국과 싸우는 사태는 현실성없는 시나리오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영토분쟁에 입장이 없다”며 일본의 기대를 저버렸다. 노다 총리가 센카쿠 국유화 방침을 밝힌 지난 7월 중국 ‘환구시보’의 여론조사에서 ‘군사적 수단’으로 대항해야 한다는 여론이 90.8%에 달했다. 이런 데도 국유화를 강행한 일본 정부를 보면 뭔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이 든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원인제공자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나 노다 총리를 책망하는 목소리가 일본에서 잘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영토문제를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우익의 마초적 선동이 일본의 이성을 마비시킨 탓일까. 일본 외교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독도를 졸지에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들어놓은 한국정부도 이번 사태를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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