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일 현안대책위 구성을

서의동 2012. 11. 1. 10:26

도쿄대학 부근 혼고산초메(本鄕三町目)의 초밥집에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와 마주앉은 것은 보름 전쯤의 일이다. 영토문제에 관해 새로 쓴 저서를 받을 겸 만난 자리에서 선생은 시종 한·일 관계의 미래에 대해 우려했다. 그 얼마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극우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당선된 것이 양국관계에 미칠 영향도 화제에 올랐다. 와다 선생은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이자, 한국의 민주화와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진력해온 실천가이다. 


“만약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해 아베 총재가 총리가 되면 한·일 관계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노다 정부가 한국으로선 맘에 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민주당 정권이 있는 동안에 양국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만들어야 한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은 정권이 교체된 듯한 착각을 유발할 정도로 대한 강경파이지만 2009년 등장한 민주당 정권 전반적으로는 한·일 관계에서 비교적 전향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초대 총리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한국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담은 ‘한일병합 100년 담화’를 발표하고 조선왕실의궤를 반환했다. 


물론 ‘독도는 우리땅’ 교과서를 비롯해 한국으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사회 전반적으로 우경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민주당 정권에 대해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이어진 선생과의 대화는 양국의 정권이 바뀌기 전에 한·일 현안을 풀기 위한 포괄적인 대화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한·일 현안대책위원회’쯤 될까. 물론 양국 간 현안이 뭔지 몰라서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현안을 일단 이 위원회에 쓸어담아 두고 대화를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해법이 도출된다면 좋겠지만, 양국 갈등을 ‘복기’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민간 전문가와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하거나 정부가 옵서버로만 참여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만든다고 해서 당장에 성과를 낼 리 만무하다. 의제 설정이나 분과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할 소지도 다분하다. 위원회에 어떤 성향의 전문가를 참여시킬지를 양측이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어찌보면 이명박 정권이 끝날 때까지 위원회가 출범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독도방문과 일왕사과 요구발언으로 키워놓은 갈등을 매듭지으려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일본으로서도 한·일 갈등을 대화로 풀려는 모습이 위험수위에 달한 중·일 갈등 완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한·일 양국 정상은 이달 19~20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3’ 정상회의에서 마주칠 기회가 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이 먼저 ‘한·일 현안대책위’ 구성을 제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양국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해 만드는 위원회라면 차기 정권에서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8~9월 그 뜨거운 여름 이후 양국은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잠시 전투를 멈추고 선수교체를 기다리는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전지대로 떠오른 동아시아의 장래를 우려한다면 분쟁 당사자들이 조속히 본격적인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정권 말기인 지금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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