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 일본 총리에 오를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재가 선거전부터 예고해온 ‘관치경제’의 시동을 걸었다. 중앙은행을 압박해 시중에 대규모 자금공급을 유도하는 한편 거시경제를 총리가 직접 챙기기로 했다. 통화정책 독립성이 법적으로 보장된 일본은행도 아베 총재의 기세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를 1%에서 2%로 상향하는 방향으로 정부와 정책협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행은 19∼20일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논의를 시작해 이르면 내년 1월 21∼22일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부와의 정책협정을 결정할 방침이다. 아베 총재는 오는 26일 새 내각 출범과 동시에 재무상 등 관계 각료에게 2% 인플레이션 목표와 관련해 일본은행과 정책협정을 맺도록 지시할 방침이다. 이는 1988년 신일본은행법 시행으로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법적으로 보장받아온 일본은행이 사실상 정부에 장악됐음을 의미한다.
아베 총재는 앞서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경제재정자문회의를 부활시켜 경제정책의 사령탑으로 삼겠으며 일본은행 총재도 반드시 출석시키도록 하겠다”며 일본은행을 압박했다. 민주당 정권시절과 달리 금융·경제정책에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강조했다.
아베의 정책목표는 중앙은행의 대규모 금융완화→물가상승→엔화약세→기업 수출경쟁력 강화→주가 상승→경제활력 증대→디플레 탈출이다. 2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디플레이션을 탈출하지 않을 경우 일본경제의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막대한 국가채무를 안고 있어 재정지출 여력이 없는 만큼 중앙은행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시중에 돈이 돌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펴지 않아 디플레가 고착화됐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아베의 경제브레인인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도 18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행도 다른 선진국처럼 2~3%의 물가상승률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국채 등을 대량 매입해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며 공격적인 금융완화를 주문했다. 그는 “일본은행이 금융완화에 소극적이고 타이밍도 놓치는 데다 (금융완화의) 규모도 작은 것이 (디플레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물가가 오르면 엔화가치가 떨어지고, 엔화약세로 기업실적이 회복된다. 또 은행대출이 증가하고, 세수도 늘어난다”며 물가상승률 목표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베의 ‘관치금융’이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해쳐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을 부추기고, 결국 일본의 국가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아베의 금융완화 의지를 피력하면서 엔화는 11월 중순이후 약세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1월1일 79.82엔이던 달러당 엔화는 지난 17일 84.1엔으로 하락했다. 모건스탠리는 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내년 1분기 85엔에서 시작해 4분기에는 90엔까지 갈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정부의 엔저 기조는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일본과 우리 경제는 수출 경합도가 높기 때문에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수출에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행 총재 등 수뇌부가 교체되는 3~4월 들어 엔화의 하락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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