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시민세력들이 채 정치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선거국면으로 접어든 것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 시위를 주도해온 일본의 작가 겸 사회운동가 아마미야 가린(雨宮處凜·37) 반빈곤네트워크 부대표는 17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민주당이 탈원전 정책을 내걸긴 했지만 그간 우왕좌왕한 것 때문에 불신이 컸고, 일본미래당이 탈원전을 내걸었지만 너무 늦게 창당돼 지지기반을 넓히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마미야는 일본유신회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시장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 지사의 태양당과 합당하느라 ‘탈원전’을 저버린 것도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탈원전’을 내세운 리버럴(자유주의)·진보계열 정당들이 참패한 반면 탈원전에 반대하거나 모호한 입장을 보인 정당들이 대거 약진하면서 민주당 정권이 구축한 원전정책의 방향전환이 불가피해졌다. 리버럴 계열의 민주당 정권은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신증설 방침을 바꿨고, 총선에서 2030년까지 ‘원전제로’를 실현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지만 의석수가 230석에서 57석으로 급감하면서 정책관철이 어려워졌다. 향후 10년 안에 모든 원전을 철폐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미래당도 9석으로 기존 의석(62석)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탈원전을 내건 사민당과 공산당 등도 세력이 위축됐다.
집권에 성공한 자민당은 모든 원전의 재가동 여부를 3년 안에 결론을 내리기로 하는 한편 안전성 여부는 원자력규제위원회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또 10년 안에 지속가능한 에너지원 구성의 최적비율을 확립하기로 하는 등 사실상 원전유지 정책을 내세웠다. 자민당은 오랜 기간 전력업계와 유착 관계였기 때문에 탈원전 추진에 대한 당내 저항이 강하다. 전력업계는 이미 자민당 정권이 출범할 경우 민주당 정권이 건설을 불허한 9기의 원전 추진이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시민그룹들은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매주 금요일 총리관저 앞의 탈원전 시위를 지속하기로 했다. 아마미야는 “자민당 정권이 원전 재가동에 나설 경우 시민세력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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