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대통령 선거 마지막날인 지난 10일 오후 일본 도쿄 주일한국대사관 내 투표장에서 만난 60대 재일동포 2세 여성들은 난생 처음 투표를 했다는 감격에 다소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기준으로 투표를 했느냐고 묻자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주변에서 좋다는 후보를 찍었지요. 한국말도 잘 모르고 하니….”
“일본 신문에 난 선거기사를 봤지만 역시 정보가 부족했어요.”
한 여성은 “투표권을 줘서 좋긴 하지만 한국사정도 모르고, 세금도 내지 않는 데 투표를 해도 되는 건지…”라며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나이든 동포들도 그렇지만 투표에 적극적인 젊은 층도 후보 선택에 참고할 만한 정보에 목말라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40대의 재일동포 3세 남성은 “선거공보물을 일본어로 배포한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김소연 후보 두 명 뿐이었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재일동포 변호사는 TV토론이 한국에서 관심을 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영상 공유사이트를 통해 토론회를 지켜봤지만,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말이 너무 빨라서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재외국민 선거인 등록자 3만7342명 중 영주권자는 53.9%인 2만139명, 유학생, 상사주재원 등 일시 체류 중인 국외 부재자가 46.1%인 1만7203명이다. 영주권자는 대부분 이곳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들로, 태반이 한국말을 제대로 구사하기 어려운 이들이다. 이들은 일본에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지만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지방선거 투표권조차 행사할 수 없다. 올들어 두 차례 조국의 선거에 참여한 재일동포들에게는 이번 선거가 평생의 한을 푸는 감격스런 기회였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해원(解寃)의 이벤트’는 한국 사정을 면밀히 파악한 뒤 적합한 후보를 고르는 선거 본연의 행위와는 거리가 있다. 한글을 모르는 고령의 재일동포들이 복지확대, 경제민주화 등 대통령 선거의 주요 쟁점들을 얼마나 숙지했을까. 일본 언론들은 대체로 후보들의 대일·대북정책에만 관심을 쏟고 있으며 그조차 피상적인 정보전달에 그친다.
재외국민 투표가 한창인 지난 9일 한 민간방송에서 방영된 정보프로그램에서는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이지만,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나빠질 것”이라는 편향적인 해설을 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는 93세의 재일동포는 언론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안보가 튼튼해야 한다. 북한하고 친하게 지내는 건 좋지만 종북은 안된다”라며 누구에게 투표했을지 뻔히 짐작할 만한 답변을 했다.
선거를 앞두고 재외국민 사회에는 잡음도 많았다. 일본의 경우 조선 총련계 동포들이 한국국적을 취득한 뒤 대거 투표에 참여할 우려가 있다며 여권이 있어야만 투표가 가능한 위헌적인 규정을 만들었고, 영사당국은 조금이라도 ‘불순’해 보이는 동포들에겐 여권을 내주지 않았다. 이 바람에 일부 동포들이 외국에 나가야 하는 데도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는 피해도 적지 않았다.
재일본 대한민국민단은 거동이 불편한 노령의 유권자들을 투표소까지 버스로 실어날랐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적법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지만 ‘민주당이 집권하면 민단 예산지원이 삭감될 것’이라며 공공연히 특정후보 지지를 유도하던 그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중립을 지켰을지 의문이다.
현지에서 지켜본 재외국민 선거는 당사자들조차 찜찜해 할 정도로 여러 문제들을 노출시켰다. 4년 뒤 총선, 5년 뒤 대통령 선거에서 재외국민들이 개운하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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