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 3

[경향의 눈] 불가역적인 남북관계의 요건

서울에 거주하는 네덜란드 청년이 지난 연말연시에 북한여행을 다녀온 뒤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렸다. 베이징에서 단둥을 통해 열차편으로 방북한 청년은 2018년 제야(除夜) 10만명이 참가한 김일성광장 설맞이 축하행사에서 불꽃놀이, 드론쇼와 축하공연을 북한 주민들과 함께 즐겼다. 남포, 사리원, 판문점 북측지역도 참관했다. 국내 한 방송사는 그의 방북영상을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를 이달 초 방영했다. 지난 7일 평양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는 40여개국에서 참가한 1000여명이 시민들의 격려를 받으며 평양거리를 달렸다. 한 일본인 참가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까우면서 먼 나라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일본 방송들은 평양시내에 늘어나고 있는 전동자전거와 태양광 패널을 소개했다. 아베 정부의 대북 강경정..

칼럼 2019.04.30

[경향의 눈] 개성공단 '희망고문 2년'

개성공단에 진출했던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 대화연료펌프는 정부가 2011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지정할 정도로 탄탄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 이후 3년간 경영이 악화됐고, 수억원대 자금을 결제하지 못해 최근 부도처리됐다. 개성공단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했던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 정기섭 공동위원장도 국내 공장 두 곳을 접었다. “개성에서 번 돈으로 국내 공장 두 곳의 결손을 메워왔는데 개성공단 중단이 길어지면서 견디기 힘들었다.” 공단 폐쇄 3년을 넘기면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버틸 힘이 바닥났다. 은행대출은 일찌감치 막혀 사채를 끌어다 쓰며 버티는 기업들도 적지 않고, 부도위기에 몰린 곳도 10여곳에 이른다. 사실상 폐업상태지만 남북협력사업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사무실만 유지하며 휴업 중인 곳도..

칼럼 2019.04.30

[경향의 눈]아키히토 일왕이 방한한다면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최대 격전지였던 오키나와는 일본의 패전 이후 미군정의 지배를 받다가 1972년 5월에야 일본에 반환됐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75년 7월 아키히토(明仁) 왕세자 부부가 와병 중인 부친 히로히토(裕仁) 일왕을 대신해 국제해양박람회 참석하기 위해 오키나와 땅을 밟았다. 전쟁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되거나 집단자살을 강요당하면서 10만명 가까이 희생됐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 정부와 전쟁의 최종책임자인 왕실에 대한 주민들의 원한은 채 가라앉지 않았다. 오키나와해방동맹준비위원회(오해동)를 비롯한 운동단체들은 한 달 전부터 ‘방문저지’를 외치며 별렀다. 왕세자 부부가 오키나와에 도착한 7월17일, 나하(那覇) 등 도심에서 수만명이 시한부 파업과 항의시위를 벌..

칼럼 201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