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차별과 전쟁에 반대했던 일본의 명배우 미쿠니 렌타로

서의동 2013. 4. 16. 10:57

14일 90세의 나이로 타계한 일본 배우 미쿠니 렌타로(三國連太郞 본명은 사토 렌타로(佐藤連太郞))씨는 일본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이자 일본에서 차별받는 '부락민' 출신으로 차별문제에 대해 사회적 발언과 실천을 해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는 과거 동물의 가죽을 벗기거나 시체를 처리하는 험한일을 하는 이들을 천시여겨 '부락(部落)'이라는 별도의 마을에 수용해 사회와 격리시켰다.) 


미쿠니의 조상은 이즈(伊豆)반도의 한 '부락'에서 거주하며 관을 짜는 일을 해왔다. 부친이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일본이 시베리아를 침략할 당시 징병됐다 돌아온 뒤 전기공사 기술자로 직업을 바꿨다. 


현역시절 미쿠니 렌타로의 모습. 출처=warotasokuhou.blog.fc2.com


하지만 미쿠니는 부락민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부락해방동맹' 등의 활동에도 협력적이었다. 1986년 5월 규슈의 구마모토시에서 열린 부락해방동맹 연수회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오히려 미쿠니는 일본 연예의 원점이 일본 전역을 떠돌며 재주르 피우던 '유예민(遊藝民)', 즉 피차별민이었으며 그 계보를 이어받은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미쿠니의 만년모습 출처=banbi5623.blog55.fc2.com


그가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해 1987년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신란, 하얀길(親鸞 白い道)>은 신분제가 엄격했던 가마쿠라(鎌倉)막부시대에 "부처님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평등론을 설법하다 권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은 당대 고승 신란을 그렸다. 원고 탈고에 7년, 영화화하는데 15년이 걸린 이 영화는 미쿠니의 차별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이 담긴 작품이었다. 


미쿠니는 <춘마>로 1951년 데뷰한 뒤 일본영화의 황금기로 불리는 1950~1960년대에 활약했고 <낚시바보일지>시리즈 등을 통해 일본영화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당시로서는 드문 신장 181cm의 장신에 훤칠한 미남배우였다.   

그는 48세에 반전을 주제로 한 영화 <호쿠신나나메니 사스 도코로>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그가 쓴 자서전에 따르면 젊은시절 징병검사에 합격한 뒤 입영을 피해 규슈의 사가현으로 도피했다가 경찰에 붙잡힌 전력도 있다. 


중국에서 패전을 맞은 그는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몸이 아파서 잔류부대에서 병기수리 일을 했다. 부상병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전쟁이 이런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미쿠니의 아들 사토 고이치/위키피디아


일본에서 가장 매력있는 중년배우로 꼽히는 사토 고이치(佐藤浩市.52)가 장남이다. 사토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룬 일본 영화 <KT>에 출연해 한국에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