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강상중 “한국의 진보·보수, 대북정책서 ‘대연립’ 모색할 때”

서의동 2013. 3. 7. 17:26

15년 재직한 도쿄대 떠나며 고별강연 


“재일동포 2세로서 일본의 매스컴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많은 발언을 해왔는데 이는 전례없는 일이었습니다.”

한국국적의 재일동포로 국립 도쿄대학의 첫 정교수인 강상중 교수(63 사진)가 15년간 재직한 학교를 떠나 다음달 세이가쿠인(聖學院)대학으로 옮긴다. 강 교수는 6일 한국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국에 처음 갔을 때 ‘반 쪽발이’라고 놀림받았지만,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고 웃으면서 “낳아준 부모(한국)와 길러준 부모(일본)가 싸우지 않도록 대학을 옮긴 뒤에도 한일관계 발전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1998년 4월 도쿄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15년간 도쿄대 사회정보연구소와 정보학환 교수, 현대한국연구센터장으로 재직하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과 TV출연, 신문 기고 등을 통해 일본 사회에 대한 통찰력있는 견해를 피력해왔다. 훤칠한 키에 부드러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화법, 섬세한 필력이 인기를 모으면서 펴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많았다. 사회적 영향력은 커졌지만 국립 도쿄대 교수라는 신분에 따르는 부담감과 활동의 제약도 느꼈다. 특히 얼마 전엔 사랑하는 아들이 스스로 삶을 끝내는 아픔을 겪으면서 고민이 깊어갔다. 그러던 차에 도쿄 인근 사이타마(琦玉)현 아게오(上尾)시에 있는 세이가쿠인대학으로부터 초청을 받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옮기기로 결정했다. 사립대학인 만큼 조금 더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아게오시는 30년 전에 제가 세례를 받은 교회가 있고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린 곳이기도 합니다.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이 특임교수로 있는 등 한국과 인연이 강한 대학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강 교수는 이날 도쿄대 후쿠다케홀에서 ‘앞으로의 북동아시아’를 주제로 한 고별강연에서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시아의 중심이자 허브 역할을 할 시대가 됐다”며 “이를 일본이 제대로 이해하고 독도 문제 등에 전략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이 일본의 국익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북정책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황당무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대북정책에서 ‘대연립’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독일도 1966년 보수·혁신 정당간에 대연립이 이뤄지면서 독일판 햇볕정책인 ‘동방정책’이 비로소 가능해졌습니다.” 남북관계가 안정돼 평화정착이 되지 않을 경우 동아시아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한국을 강제병합했던) 메이지 시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주변국과의 영토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야가 생긴다”고 지적하는 한편 한국에 대해서도 “한반도를 침략한 것이 일본만은 아니었던 만큼 당시 국제관계 속에서 한국의 상황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2009년 민주당 정권이 집권 후 내걸었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사문화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런 과정으로 가는 과도기”라며 “이미 경제적으로 깊은 상호의존 관계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치안보 부문에서 이를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을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에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등 학계인사와 이경수 주일한국대사관 공사를 비롯해 20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