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미 FTA 관련 원고

서의동 2006. 2. 10. 18:00
‘FTA No Our rice Yes Screen Quotas Yes!’ ‘우리 쌀 우리 영화 우리가 지켜가자’ 

 영하의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7일 저녁 6시쯤 미 대사관에서 100여m 떨어진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광장’에는 다소 이색적인 구성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스크린쿼터 사수와 FTA저지를 위한 쌀과 영화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영화인과 농민 등 2500여명이 "쌀과 영화를 사수하자"며 목소리를 합쳤다.  

 관객 1천만명의 대흥행을 기록한 영화 ‘왕의 남자’를 만든 이준익 감독 등 영화인들은 “문화전쟁의 시대에 정부는 지난 세기의 경제논리로 문화를 재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결정을 비판했다. 농민들도 “생명주권인 쌀을 빼앗는 것보다 문화, 혼을 빼앗는 게 더 악랄하며 영화를 빼앗기면 쌀을 빼앗기는 것도 시간문제”라며 영화인-농민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성기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위 대책위 공동위원장과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나란히 무대에 올라 “국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FTA에 반대한다”는 연설문을 번갈아 읽어갔다. 

 지난 3일 미국 워싱턴에서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롭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공동선언으로 출범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초기부터 역풍에 휩싸이고 있다.  FTA협상개시 선언에 앞서 정부가 밝힌 한국영화 스크린쿼터 축소결정로 영화인들의 반발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세계 제1위의 농업강국인 미국과의 FTA체결로 막대한 농업피해가 예상되면서 농민들의 분노도 표출되기 시작했다. 

영화인과 농민을 중심으로 시작된 반발 움직임에 사회단체들도 점차 가세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농, 민중연대, 전교조, 민변, 민언련, 환경운동연합 등 113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스크린쿼터 사수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 준비위’가 지난 15일 출범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신임대표도 한미 FTA협상을 “전면적인 도전”으로 규정하고 “당 차원의 전면적 대응을 기조로 싸우겠다”고 선언하는 등 정치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학계 등 지식인 그룹 일각에서도 ‘반(反) FTA’ 목소리가 또렷해지고 있다. 경실련 공동대표인 김성훈 상지대 총장(전 농림부 장관)은 지난 13일 ‘서울경제신문’에 올린 ‘군사작전식 FTA‘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참여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정부가 하루만에 뚝딱 해치운 한미 FTA협상 개시 선언은 민주주의도, 참여정부도 아닌 ‘관료주의 행정’의 표본"이라고 준엄하게 비판했다. 참여정부 초기 국가정보원 기조실정을 지낸 서동만 상지대 교수도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에 기고를 통해 “’느닷없이 발표된‘ FTA 협상개시 선언은 ’국민이나 국회의 논의가 철저히 배제된 밀실외교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다. 저서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을 통해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해온 장하준 케임브리지 교수는 지난 14일자 ’한겨레‘에 "정부는 다수의 확실치도 않은 조그만 이익을 위해 소수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투쟁 ‘전열’이 완전히 가다듬어지지 않은 ‘예열’ 단계의 이같은 움직임으로 미뤄볼 때 갈수록 반발강도가 커지리라는 짐작을 쉽게 해 볼 수 있다. 

 한미 FTA가 이처럼 반발을 사고 있는데는 대략 두가지 요인이 꼽히고 있다. 첫째 미국과의 FTA에서 우리가 얻을 실익이 과연 무엇이냐는 의문이다. 또하나, 협상개시를 전후해 나타나고 있는 정부의 석연치 않은 태도에 비춰볼 때 ‘수퍼파워’ 미국과의 협상에서 실익을 제대로 챙길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F)를 비롯한 국책연구기관들은 한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할 경우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GDP가 최대 1.99%(135억달러)성장하고 대미 수출은 15.1%(71억달러), 고용은 0.63%(10만4천 명)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한마디로 실익이 크다는 것이지만 반대론자들은 이런 거시경제상의 수치 대신 산업계의 양극화와 고용불안및 삶의 질 후퇴 등 폐해가 더 심각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업종만 수혜를 입을 뿐 농업을 비롯한 취약산업은 쇠퇴하면서 산업간 양극화가 극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핵심적인 경제현안인 일자리 문제에서도 반대론자들은 10만4천개가 늘어난다는 국책연구소들의 예측에 대해 고용의 질이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맞받는다. 장하준 교수도 지난해 한 세미나에서 “정부가 서비스업 개방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이 분야에서 많게는 15∼20%의 실업자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용의 양이 늘어날 수는 있어도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식 노사관계가 도입되면서 안 그래도 심각한 비정규직이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서비스업의 경우 미국 거대자본과 경쟁해야 하는 중소 영세상인들은 다 몰락하게 되고, 경제적 실익을 넘어 사회적인 환경·노동권 등이 파괴될 것”이라며 “그동안 저소득층에 대한 재분배 구실을 해왔던 의료·교육 등 공공 서비스가 민간 경쟁에 노출되면 양극화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연대 ’는 지난 17일 2006년 정기총회에서 발표한 특별결의문에서 한미 FTA의 폐해를 6가지로 정리했다. 한미 FTA는 ▲미국 자본과 한국 4대 재벌만의 이익을 볼 뿐이고 ▲미국자본에 의한 금융투기가 과열되며 ▲공공서비스의 민영화와 사회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또 ▲농업공황과 생태 파괴 ▲영화와 문화산업 전반의 파괴 ▲환경·여성·교육·노동·보건의료의 파괴 등도 언급됐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가 경쟁이 지상과제인 ‘벌거벗은 자본주의’로 철저하게 재편될 것이고 사회양극화가 더 심화되면서 계층간 균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암울한 진단들이다. 한미FTA는 ‘제2의 경제한일합방’, ‘제2의 IMF위기’라는 자극성이 높은 구호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한미FTA의 미래가 장밋빛만은 아니라는데는 국책연구소 관계자들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이홍식 대외경제정 책연구원(KIEP) FTA팀장은 지난 2일 FTA 공청회에 앞서 배포한 주제발표 원고에서 "개방전략과 국내산업대책이 효과적으로 연계되지 못할 경우 교역및 외국인투자가 확대되더라도 경제성장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멕시코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며 FTA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 당국자들도 FTA가 어떻게 얼마나 국익에 보탬이 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경제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솔직히 한미 FTA의 효과에 대해 확실한 전망 데이터가 없어 국민에게 어떻게 설득을 해갈지가 문제"라며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FTA 기대효과를 놓고 전망치가 최대 30%나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내부에서조차 명확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분야별로 세밀한 전망을 토대로 국민을 설득해 나가는 작업이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급발진’이나 다름없는 정부의 FTA협상 개시선언의 모양새도 국민에게 석연치 않은 인상을 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8일 신년연설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추진입장을 밝힌 이후 1주일만인 1월26일 한덕수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스크린 쿼터를 절반으로 축소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한데 이어 2월3일 FTA가 양국공동 선언으로 개시되는 등 초스피드로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2일 열린 공청회가 농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됐으며 우리 대표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서 개시선언을 하는 등 스타일도 썩 바람직스럽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에 대한 정부의 답변역시 명쾌하지 않다. 

정부당국자들은 "미국 무역대표부가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신속협상권(TPA)이 내년 6월 종료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고 답변하고 있다.  TPA가 내년 6월 종료되면 언제 다시 이 제도가 부활할지 모르기 때문에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것인데 FTA로 이익을 볼지도 확실하게 감이 오지 않는 국민들의 눈에 미국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며 서두르는 정부의 태도는 황당하게 비쳐질 수 있다. 

정부는 게다가 FTA의 선결조건이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문제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자동차 자동차배기가스 저감장치의무 완화 ▲의약품 약가산정 문제 등 미국이 제시한 4가지 요구사항을 협상도 시작하기 전에 전격 수용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본격적인 FTA 협상이 벌어진 뒤 한국과 미국 사이에 밀고 당기기가 진행되면서 결정돼야 할 결정들인데도 ‘통크게’ 양보부터 하고 나선 정부의 태도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은 이를 두고 "백기(白旗)를 들고 협상장에 나선 셈"이라고 비꼬았다. 

 정부의 상식을 벗어난 협상 추진에 발끈한 국회의원들이 41명은 정부의 통상협상 추진에 사회적 합의를 제도화할 것 등을 골자로 한 ‘통상절차법‘을 발의, 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권경애 변호사는 “미국 같은 경우 자국내 이해집단의 요구를 통상 협상 때 다른 나라에 대한 압박의 근거로 활용하는데 우리쪽에선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사고 자체가 없다”며 “미국의 요구에 반발하지 않게 (국내 이해관계자들을) 눌러주는 역할만을 하고 있다. 행정부의 기본 태도가 사대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일단 닻을 올렸지만 한미 FTA는 갈수록 거세지는 국내 이해세력들의 반대움직임을 설득해 가며 협상에 임해야 하는 다중(多重)의 부담을 안고 있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정치주체들이 FTA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확대에 이용할 가능성은 물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파문,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움직임 등으로 사회저변에 축적되고 있는 ‘반미정서’가 FTA와 연계될 경우 반대론이 일시에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FTA로 극심한 피해가 우려되는 농민들의 자살 등 극한투쟁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출발하기는 커녕 초기단계부터 극심한 사회갈등과 계층균열이 예고되고 있는 한미 FTA를 정부가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FTA는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옳으니 국민은 무조건 따라오라’식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 FTA는 아무리 협상을 잘해도 국내의 동의(국회의비준)를 받지 못할 경우 헛일이 되기 때문이다.” FTA의 핵심은  ‘국내와의 협상’이라는 전문가들의 충고를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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