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K-1과 커피프린스, 농촌

서의동 2007. 9. 13. 14:06
최홍만 같은 ‘씨름스타’가 뛰어들면서 종합격투기 ‘K-1’이나 ‘프라이드’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도 부쩍 높아졌다. 케이블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어렵지 않게 종합격투기를 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에서 치러지는 대회는 다소 밋밋하다.

이웃 일본은 좀 다르다. 유명 여배우인 후지와라 노리카(藤原紀香)가 방송해설자로 나서 피가 튀는 링 옆에서 탄식과 환호를 연발하고 무사시 같은 파이터들이 TV프로에 게스트로 나오는가 하면 밥 샵 같은 외국선수들이 CF모델로 등장한다.

종합격투기의 발상지이고 선수층이 두껍다는 점 말고도 일본의 종합격투기 대회엔 우리에겐 없는 드라마적 요소가 있다. 선수들간의 불꽃 튀는 주먹대결 외에 ‘누가 누구에게 지고 누군 누구에게 이겼고, 이번엔 누가 누구와 붙는다는데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서사(敍事)구조가 링밖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면서 흡인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A도장 출신의 B선수가 C도장의 D선수한테 지자 B의 제자인 E선수가 링에 난입해 마이크를 잡고 “다음에 한판 붙자”며 으르렁거릴 때 팬들은 후끈 달아오른다. 무술도장을 돌며 가장 뛰어난 관원과 붙어 꺾은 뒤 도장간판을 떼가는 ‘도장깨기(道場破り)’라는 옛 전통도 팬들의 뇌리에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일본의 종합격투기 대회는 이처럼 파이터들의 주먹대결이라는 기본구도 위에 여러 드라마틱한 장치들이 가세하며 강력한 흥행력을 갖게 된다. 

어떤 분야건 드라마적 요소가 더해질 경우 흐름에 탄력이 붙게 되는 것은 같은 이치다. 

최근 몇년새 도시민들의 농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주말 농촌체험이 보편화하고 농촌도 도시민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서 도농교류의 ‘하드웨어’도 점차 갖춰지고 있다. 

이런 흐름속에 농촌을 소재로 한 TV드라마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난해 도시여성과 농촌총각 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TV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가 방영됐고, 얼마전 젊은 세대의 뜨거운 호응 속에 종영한 ‘커피프린스 1호점’에선 커피숍 직원들이 농촌 과수원에서 단합대회를 갖는 장면이 나온다. 땀흘려 사과 수확 작업을 벌인 뒤 개울가에서 멱을 감으며 우애를 다지는,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 극의 신선도를 높였다.
 

산업화에 따른 피로감이 확산되면서 농촌이 가진 장점이 이제는 도시민들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다. 이런 가운데 도시민들의 관심에 불을 붙일 문화 콘텐츠들이 보다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도시와 농촌간의 간극을 촘촘히 이어줄 수 있는 서사구조들 말이다. 도시여성이 농촌에 시집와서 겪는 에피소드나 도농교류에서 영근 러브스토리 따위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나온다면 도농교류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고 농촌에 대해 일기 시작한 관심을 ‘열광’으로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도시 직장여성이 농촌총각과 결혼하는 내용을 담은 일본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은 1991년 개봉됐던 해 일본내 흥행 1위를 기록했고 1990년대 일본의 도농교류 운동인 ‘그린 투어리즘’을 확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 개시선언 직후 영화인들과 농업인들이 서울 도심에서 ‘쌀과 영화’라는 문화제를 개최했다. 함께 연대해 FTA를 반대한다는 취지였지만 배경이야 어찌됐건 당시의 결의가 수준 높은 농촌영화 탄생으로 열매를 맺는다면 좋겠다. 농업인과 대중문화인들 간의 ‘아름다운 동행’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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