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M&A와 한국경제

서의동 2007. 7. 21. 14:04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삼성전자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Mergers and Acquisitions)을 시도할 것이라는 풍문이 경제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시가총액 100조원(19일 종가 기준 93조6824억원)에 육박하는 거대한 덩치를 감안하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몇 달 전 글로벌 철강회사 간 합병바람이 불면서 포스코가 M&A가능성에 시달렸음을 상기한다면 이런 시나리오가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의 재임기간 중 여러 경제현안이 있었지만 M&A문제도 핵심현안 중 하나로 꼽힌다. 2004년 SK에 대한 소버린의 공격을 비롯해 KT&G에 대한 칼 아이칸과 스틸 파트너즈의 적대적 M&A위협 등 크고 작은 M&A가 회오리를 일으키며 우리 사회를 긴장시켰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M&A는 ‘선량한 기업의 뒤통수를 치는’ 온당치 못한 행위라는 이미지가 쌓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M&A는 불가피한 경제현상이자 기업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다. 이달 초 자본시장통합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정부는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증권사에 대한 M&A를 유도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해외기업에 대한 M&A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게 나온다. 코스닥시장에서는 경영권을 사고파는 일이 거의 매일 일어나고 있다. 

이쯤해서 M&A에 관한 일반인들의 관념을 정리해보면 대체로 “M&A는 불가피하지만 내 회사가 M&A당하는 건 싫다”거나 “우리 기업이 외국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을 먹는 것은 용서 못한다” 정도일 것 같다. 

외국은 어떨까. 미국만 해도 연방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에너지, 통신 등 기간산업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외국인의 경영권 획득을 직권으로 막을 수 있는 법을 만들어놨다. 유럽이나 일본도 다양한 방식의 경영권 방어장치를 도입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받아들인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볼 때도 경영권 방어장치를 두는 게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대외개방을 통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우리 처지에서 외국인 투자를 최대한 자유롭게 해줄 필요가 있다”는 논거를 들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M&A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생각은 천차만별이다. 지난 1997년 4월 상장주식 10% 이상 취득 때 금융감독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법규정을 폐지, M&A의 물꼬를 튼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우리의 ‘M&A관(觀)’에는 합리적 판단보다는 감정이 배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적대적 M&A는 의외로 극소수에 그쳤으며 대부분은 구조조정이나 기업회생, 또는 기업가치 활용을 위한 우호적 M&A였다. 

최근 금융감독당국의 고위 관계자가 M&A 문제를 범국가차원에서 논의하기 위해 ‘국가M&A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M&A제도는 우리 경제와 기업의 미래, 우리 금융시장의 장래가 걸린 중요한 국가 인프라인 만큼 단편적이고 간헐적으로 제기된 M&A문제를 범국가 차원에서 논의하고 의견을 집약할 국가차원의 의견수렴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주장의 요점이다.

대외개방을 통해 먹고살아야 하는 한국의 ‘숙명’을 생각할 때 지금과 같은 M&A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렇다 해도 최소한 국가기간산업만큼은 보호장치를 둬야 할 것인지, 기간산업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M&A에 붙는 숱한 논란들에 대해 편견을 버리고 하나하나 치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기가 됐다. ‘정서법’(情緖法:Culture Law)만으로 M&A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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