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각료들이 한국과 중국의 우려에도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은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이들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정권의 정체성까지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일본 정부 안의 기류변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일본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등 각료 3인의 참배는 개인적인 참배로, 외교문제와는 별개라는 반응을 보였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2일 “각각의 나라에는 각각의 입장이 있다. (참배 문제 등이) 외교에 너무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며 윤병세 외교장관의 방일 취소에 대해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8·15도 아닌 봄철에, 그것도 총리가 아닌 일반 각료의 참배를 두고 한국이 지나친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국 외교관계에 야스쿠니 문제가 갖는 민감성을 익히 알만한 일본의 각료들이 윤 장관의 방일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참배를 강행한 것은 ‘관계회복을 위해 머리 숙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아베 정권은 당초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환영했고, 이명박 정부 때 뒤틀린 한·일관계를 조기에 복원시키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한국이 ‘역사인식’만을 강조할뿐 확실한 메시지를 주지 않자 기대가 사그라들었다. 또 박근혜 정부가 부쩍 대중 접근을 강화하면서 외교 우선순위에서 일본이 밀려난 것도 열의를 잃게 했다. 한 한·일관계 전문가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한 토론회에 갔더니 일본의 외교 관련 인사들이 박근혜 정부의 대일 태도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불만스러워 했다”고 기류를 전했다. 더구나 양국간에는 독도, 일본군 위안부 등 부담스러운 현안들이 도사리고 있어 무리하게 관계 회복을 시도할 경우 지지기반인 보수층이 반발해 정권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아베노믹스’의 초기 성공으로 70%를 넘는 지지율을 보이면서 자신감이 붙은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헌법개정, 교육 등 내정문제에서 ‘우익본색’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사안 하나 하나가 한국과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아베 정권은 주변국 관계회복이 다소 지체되더라도 내정문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양국이 긴급히 협의해야 할 현안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한 듯 하다.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이 지난 10일 교과서 검정제도의 주변국 배려조항을 고치겠다고 공언하는 등 최근들어 아베 정권의 언행에서 ‘주변국 무시’ 경향이 감지되는 것도 이런 기류변화와 관련이 있다.
일본 외교가에서는 한·일간의 외교관계 복원작업이 올 하반기로 미뤄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일본의 한·일 관계 전문가는 “윤 장관의 방일 중지를 계기로 한국과 당분간 냉각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일본 정부 안에서 강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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