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문화계의 최대 이벤트로 꼽히는 아이돌 그룹 ‘AKB48’의 총선거에 일본 열도가 또한번 들썩거리고 있다. 음반불황시대에 170만장이 넘는 CD 매출을 올리는 AKB총선은 지나친 상술이란 비판에도 ‘일본판 창조경제’로 불릴 만한 이벤트로 평가된다.
5회째를 맞이하는 올해는 AKB48 멤버 72명을 비롯해 자매그룹인 SKE48, NMB48 등의 멤버까지 246명이 입후보했다. 이 가운데 상위 64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베스트 16명은 그룹의 32번째 싱글곡을 부를 권리를 갖고, 나머지 48명은 16명씩 ‘언더걸즈’ ‘넥스트걸즈’ ‘퓨처걸즈’로 묶여 앨범 수록곡 녹음 및 방송, 광고출연 등을 할 수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7일에 걸친 투표 결과는 8일 관객 7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요코하마의 닛산 스타디움에서 민영방송 후지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공개된다. 스포츠지 등은 선거기간 동안 AKB특집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2011년에는 닛칸(日刊)스포츠가 총선결과를 알리는 호외를 뿌리기도 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Akihabara News
AKB48 총선이 창조경제로 불릴 만한 데는 이유가 있다. 총선거에 유권자로 참가하려면 AKB팬클럽 회원이거나 최근 발매된 AKB48의 싱글앨범 ‘사요나라 크롤’(1만8000원)을 사야 한다. 정치선거처럼 ‘1인 1표제’가 아닌 ‘1인 다표’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를 상위권에 올리기 위해 수십~수백만엔을 들여 수백~수천장의 CD를 사재기하는 이들도 있다.
문화비평가 하마노 사토시(濱野智史·33)는 CD 140장을 구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사재기도 한몫하면서 지난달 22일 발매된 이 앨범은 일주일 만에 176만3000장이 팔려나가 역대 첫주 음반 판매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학자, 비평가들도 선거열기를 고조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우익 만화가인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よしのり)나 소장 논객으로 주목받는 우네 쓰네히로(宇野常寬) 등은 AKB의 절대적인 후원자로 자처한다. 도시샤(同志社)대학 야노 타마키(矢野環)교수는 ‘계통문헌학’이란 방식을 활용해 지난해 베스트 16명의 명단을 개표 전 적중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총선이벤트가 지나친 상술이며 자원낭비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 수백장씩 CD를 사들이지만 이 CD들은 중고시장에서도 유통이 안될 정도로 폐기물 취급을 받는다. 때문에 인터넷 공간에서는 ‘헛돈쓰기에 자원낭비’라는 비판이 몇 년째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AKB총선은 총리를 직접 뽑을 수 없는 간선제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걸그룹 선거를 통해 대리만족을 찾으려는 대중들의 욕구와 일본 특유의 후원문화 등을 제대로 활용한 국민 이벤트로 정착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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