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옛 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 배상 의향”

서의동 2013. 8. 18. 18:40

ㆍ한국 법원 판결 확정되면

ㆍ일 언론 보도… 상고심 계류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에게 일을 시킨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이 한국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 배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산케이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한·일간 주요 갈등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되는 셈이지만, 일본 내 보수세력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실제 배상이 실현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케이신문은 “일본에서 전시징용된 한국인 4명이 미지불 임금 등 개인보상을 요구한 소송에서 피고인 신일철주금이 4억원(3500만엔)을 배상하라고 명령한 서울고법 판결과 관련해 패소판결이 확정되면 배상에 응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고 보도했다. 신일철주금은 고법판결과 관련해 ‘판결확정 전 화해’, ‘확정판결시 이행’, ‘확정판결 이후에도 배상에 불응’ 등 3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했다. 

하지만 화해의 경우 징용 피해자 측이 보상기금의 설립을 요구하고 있는 데다 대상이 계속 늘어날 수 있어 응하기 어렵고, 배상에 불응할 경우 한국 내 자산과 외상매출 채권 등이 압류당할 수 가능성이 있는 점을 감안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일철주금의 간부는 “거래처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확정판결을 무시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신일철주금의 배상 방침에 일본 내 보수세력들이 반발이 만만치 않아 배상이 실현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보수세력들은 일본 기업이 배상에 나설 경우 중국에서도 배상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사가인 하타 이쿠히코(秦郁彦)는 “한일청구권 협정상 배상금을 지불할 의무가 전혀 없다”며 “개인청구권을 이처럼 인정하게 될 경우 청구권포기가 확인된 중국에서도 문제가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일철주금과 마찬가지로 지난 7월 부산고법에서 배상명령을 받은 미쓰비시중공업은 산케이신문 취재에 “화해할 계획은 없다”면서 “상고심에서 주장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믿고 있지만, 만일 패소할 경우 외무성, 경제산업성 등과 협력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금명간 한국법원에 상고할 예정이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산케이신문의 취재에 “배상이 필요 없다는 데 정부와 기업의 인식이 일치하고 있다”면서도 “소송이 진행 중이므로 판결확정이나 자산압류 후의 대응에 대해서는 가정해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징용 배상’ 의사표명 왜… 옛 일본제철, 포스코 지분 등 재산압류 우려한 듯


ㆍ투자보호협정 등 들어 일 정부, 반격 가능성
ㆍ비슷한 소송 잇따를까… 중국서도 예민한 반응

신일철주금이 일제 강점기 징용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기업경영에 미칠 악영향을 감안한 소극적인 대응으로 풀이된다. 신일철주금은 포스코 주식 지분 5% 등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배상에 불응할 경우 가압류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일철주금 관계자가 “판결을 전혀 납득할 수 없지만, 민간기업으로서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산케이신문에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결국 징용피해자들의 소송투쟁과 한국 사법부의 판결이 일본 기업들을 배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한 ‘물리력’으로 작용한 셈이지만,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가 투자보호협정 등을 근거로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묻는 등 반격에 나설 가능성도 예상된다. 

일본 보수세력은 신일철주금의 배상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 사법부의 판결에 따르는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중국과도 유사한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1930년대 ‘난징(南京)대학살’을 다룬 일본 책에 대해 중국 여성이 명예를 훼손했다며 2007년 중국 안에서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의 출판사가 배상명령을 받았고, 이의 강제집행을 요구하는 소송이 도쿄지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10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여윤택(가운데), 이춘식(왼쪽)옹 등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와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자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법원이 지난해 5월 “한일청구권협정을 이유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원심을 파기한 이후 한국 사법부가 잇따라 일본 기업들에 배상책임 판결을 내리면서 일본 기업들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몰려 있다. 배상판결을 받아들일 경우 일본 내 여론의 비판을 사게 되고, 배상명령을 거부할 경우 재산압류 등의 조치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등 해외에서 전개하는 비즈니스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여러 건의 강제징용 소송에 걸려 있고, 최근에는 군수업체 후지코시에 대해서도 소송이 제기되는 등 일본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확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일 일각에서는 강제징용 배상 소송을 당한 일본 기업들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배상펀드 등을 만드는 방식이 거론돼 왔다. 외교전문가인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 교토산업대 교수도 최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뭉뚱그려 해결하는 기금 설립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재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가 조정에 나서야 하지만 “개인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지난달 10일 “한·일 간 재산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우리나라(일본)의 종래 입장”이라고 못박았다.

한·일 외교소식통은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 취지를 뒤집는 한국 사법부의 판결에 따른 기업 손실에 대해 한국 정부에 배상책임을 묻거나 한·일 투자보호협정 등을 근거로 압박할 가능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