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아베, 역대 총리 다 했던 ‘반성’ 언급 안 했다

서의동 2013. 8. 15. 18:34

ㆍ‘전쟁 않겠다’ 맹세도 생략 파문… 각료 3명 등 신사 참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의 패전일인 15일 개최된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역대 총리들과 달리 ‘아시아국들에 대한 가해와 반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 부도칸에서 일왕 부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도식 식사에서 “역사에 겸허하고 배워야 할 교훈은 깊이 가슴에 새기겠다”고 밝혔으나,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이후 역대 총리들이 8·15 전몰자추도식에서 표명해온 ‘가해와 반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매년 총리 추도식사에 들어 있던 ‘부전(不戰)의 맹세’ 문구도 생략됐다.

이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역대 총리는 매년 추도식에서 ‘아시아 국가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며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을 표명해왔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날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외국에 대한 반성을 (연설에) 담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총무상,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납치문제담당상,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행정개혁상 등 아베 내각 각료 3명과 국회의원 100여명은 이날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아베 총리는 참배 대신 총재특별보좌관을 야스쿠니 신사에 보내 ‘자민당 총재’ 명의로 공물료를 사비로 봉납했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는 대신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인식을 재차 드러냄에 따라 한국, 중국 등과의 관계 회복이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조태영 대변인은 일본 각료와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항의 논평을 내고 “일본의 지도급 정치인들과 일부 각료들이 또다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여러 형태로 경의를 표한 것은 이들이 여전히 역사에 눈을 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은 주중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고,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역사 정의와 인류의 양심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도쿄 | 서의동·베이징 | 오관철 특파원·유신모 기자 phil21@kyunghyang.com>


아베의 역사인식 노골화… 뒤통수 맞은 한·중 등 국제사회 반발

ㆍ‘극우 정체성’ 부각시켜 보수층 불만 달래기
ㆍ일 총리실 “영령에 감사 취지” 군색한 해명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패전일인 15일 과거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반성의 뜻이 없음을 재확인시켰다. 한국, 중국 등의 관심이 집중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자제하는 대신 자신의 역사인식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어서 한국, 중국 등은 물론 국제사회의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이날 ‘전국전몰자추도식’ 추도사에서 역대 총리들이 표명해온 ‘가해와 반성’, ‘부전의 결의’를 생략한 것은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겠다”는 등 지난 4월 국회 발언을 통해 드러낸 역사인식이 결코 바뀌지 않았음을 표명한 것이다. 아베는 반성을 생략한 대신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이 국제사회에 크게 기여해왔음을 강조했다.

그는 첫 총리 재직 시절인 2007년 8·15 때만 해도 “2차 세계대전에서 우리 나라는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에게 매우 큰 손해와 고통을 줬다. 국민을 대표해 깊은 반성과 희생자들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히고 “부전의 맹세를 견지하고 세계의 항구적 평화 확립을 위해 적극 공헌해 나갈 것을 맹세한다”고 말한 바 있다.

NHK방송은 이와 관련해 총리실 관계자가 “지금까지는 추도사의 대상이 국민인지 외국에 대해서인지를 확실하게 하지 않았다”면서 “이번에는 영령에 대해 결의와 감사를 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또 일본 정부 관계자는 “아시아 각국에 대한 가해 책임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며, 이는 외교의 장에서도 전할 수 있다”고 방송에 말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으로는 역대 총리가 줄곧 강조해왔고, 국제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큰 내용을 생략한 것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결국 아베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정체성을 재부각시킴으로써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미룬 것을 불만스러워하는 보수여론을 달래려 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에 아베 총리가 반성을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고 싶었는데, 가지 않은 점을 감안한 것 같고 또한 자신의 색채를 보이려 한 것 같다”며 “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한 것 이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인 듯하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지난 5월 이후 잠복했던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름으로써 한국·중국과의 관계 회복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게 됐다. 한국·중국으로서는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한국 외교 소식통들은 8·15에 아베 총리를 비롯한 주요 각료들이 참배하지 않을 경우 이날을 고비로 한·일 양국이 관계회복을 모색할 것으로 관측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일 비판의 톤을 비교적 누그러뜨린 것도 이런 제스처로 풀이되던 터였다. 

한·일관계 소식통은 “박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한 언급은 상당히 전향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베가 한·일 갈등의 핵심이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이처럼 진정성을 보이지 않음에 따라 이런 관측이 어긋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