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일본 ‘8·15 패전일’ 야스쿠니 신사 르포

서의동 2013. 8. 15. 18:32

옛 일본군복 입은 노인들, 기미가요 속 행진 ‘우익 해방구’

ㆍ일본 ‘8·15 패전일’ 야스쿠니 신사 르포

“‘받들어 총’을 어떻게 하는지 시범을 좀 보여주세요.”

15일 오전 일본 도쿄 중심가 지요다(千代田)구 구단시타(九段下)에 위치한 야스쿠니(靖國) 신사 광장 한쪽에서 20대로 보이는 일본 젊은이의 요청을 받은 구일본군 병사 차림의 노인은 허리춤에서 대검을 꺼내 구식 소총에 장착했다.

노인은 “엄지손가락이 총과 수평이 되도록 한다”며 시범을 보였고, 구경하던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노인 옆에는 역시 군복 차림의 젊은이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쓰였을 법한 낡은 욱일승천기를 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본의 패전일인 이날 야스쿠니 신사는 우익세력들의 해방구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군복을 갖춰입고 구식 소총에 총검을 장착한 무리들이 진군 나팔과 행군 구령에 맞춰 신사 광장을 행진했고, 한쪽에선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울려퍼졌다. 마치 시곗바늘을 68년 전으로 되돌려 전전(戰前)으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헬멧을 쓰고 제복을 갖춰입은 이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독일은 일본과 함께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다. 선글라스에 턱수염을 기른 채 감색 제복을 입은 험악한 인상의 우익단체 회원들이 ‘망국 무라야마 담화 규탄’ ‘천황폐하 만세’ 등의 글귀가 쓰인 깃발을 들고 경내 곳곳을 활보했다. 강경보수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들어선 탓인지 우익세력들의 기세는 예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야스쿠니 신사가 군국주의의 상징임을 확연히 보여주는 전시시설 유슈칸(遊就館)에서는 ‘대동아전쟁 70년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일본이 미드웨이섬의 미군기지를 공격한 1942년부터 1943년까지의 전투에서 ‘산화한 영령’의 유품이나 서적 등이 공개됐다. 신사 경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 고노 담화의 철폐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전 8시쯤 신사 입구에서는 이종걸 의원 등 한국 민주당 의원들이 일본 아베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찾을 것이라는 소식에 자극받은 우익들이 100명쯤 되는 한국과 일본 취재진을 향해 “조센징(조선인)” “고노야로(이놈)” 등 욕설을 퍼부었다.

도쿄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혐한시위를 주도해온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 멤버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한국 방송사 카메라가 눈에 띄자 “한국 언론이 어디라고 찾아왔느냐”며 항의했고, 머리를 짧게 깎은 한 우익은 취재진을 향해 돌진하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