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뭐든 쓰는게 많은 나라

서의동 2004. 4. 18. 18:46
일본서 살면서 늘상 느끼던 일인데 오늘 새삼 실감한 것은 여기선 뭐든 손으로 쓰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오늘 수강신청변경을 하러 담임인 미사키 선생을 만나러 갔다. 이러이러한 과목을 저러저러한 과목으로 바꾸겠다고 했더니 선생이 이제 1학기의 4분의1쯤 지났는데 지금 변경하면 출석등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중급 문법을 듣겠다고 했더니 놀라면서(왜냐하면 나는 지금 상급코스이기 때문임) 문법선생한테 편지를 쓰라는 것이다. 짤막해도 좋으니까 상급인 당신이 왜 지금 수강신청을 변경해서까지 수업을 듣고자 하는가 하는 이유를 쓰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저주저하다가 다시 상담을 해서 과목을 다른 걸로 바꿨다. 그런데 미사키선생이 이 과목들도 중간에 듣게 되는 것이니 앞으로 출석을 잘하라고 하면서 그 선생들에게 이 학생이 수강변경하게 된 사연을 그 자리에서 편지로 쓰는 것이다.

사실 컴을 쓰게 된 뒤로 손으로 편지를 써본적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이런 것들이 번거롭기 짝이 없다. 일본어 작문이 자신없는데다 툭하면 한자를 틀리기 일쑤여서 여간 겁나는 게 아니다. 게이오대학에 나를 받아준 교수에게도 편지를 써야했다. 먼저 이메일로 필요한 서류를 보냈지만 선생이 "역시 편지를 한장 쓰는게 좋겠다"고 권해서 쓸수 밖에 없었다.

여기는 편지말고도 여러가지 수속이 많고 복잡한 나라다. 은행에서 통장을 만드는데 왜 내 직업이 필요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양식에서 빈칸이 한곳이라도 있으면 금방 제동이 걸린다. 친절하게 웃으면서도 한손가락으론 미비한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통장말고도 핸드폰, 인터넷 할 것 없이 뭐든지 종이로 된 신청서에 반드시 주소와 직업 집 전화번호 이메일 등등 각종 사항을 빠짐없이 적어내야 패스한다. 

그런데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런 시스템이 좋은건지 어떤건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의 주인공을 연상하며 편지를 읽는 기분도 뭐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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