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서의동 2004. 5. 17. 19:15
요즘 내 최대관심사는 일본어다.(쓰고 보니 좀 이상하군)

마흔살 가까이 살면서 정복한 외국어가 단 한개도 없는 나로서는 이 1년간이 갖는 의미가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어렸을땐 언어감각이 있다는 이야기도 조금 듣긴 했는데 어찌어찌해서 영어하고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래도 대학입시는 대학입시형 영어, 회사에 들어올때는 고시용 영어만 배우면 그다지 불편이 없었다. 물론 가끔 외국나가거나 하면 귀국길 비행기안에서 "다시 영어책을 잡아야쥐"하고 작심삼일하던 적은 많다.

어쨌건 남의 나라말이란 것에 대해 심각하게는 아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외국어를 너무 괄시하며 사는 것 아니냐는^^)이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늘 뭉개둔채 수십년을 살아온 것이다. 

영어가 안되고 무섭다보니 차선으로 택한 게 일본어다. 대학교때 잠깐 기초문법만 배워둔 채 까먹었던 일본어를 다시 잡기 시작한 건 결혼한지 얼마안돼 딸기가 (충동구매)로 70만원짜리 일어테잎교재를 산 뒤부터다. 그런뒤로 조금씩 들여다보다 말다 하면서 결국 이렇게 일본에 연수까지 오게 된 거다.  

이곳 게이오대학의 일본어연수과정은 4레벨로 돼 있는데 나는 3레벨에 속해 있다. 1주일에 13과목을 90분씩 들으니 하루평균 3시간이 좀 넘게 배우는 셈이다. 한 석달쯤 하다보니 선생님이 무슨말을 하는지는 알아듣는다. 늦깍이 학생이니까 공부밖에 할 게 없고 그래서 과제나 시험도 충실히 하고 있다. 뭐 이런 식으로 1년만 하면 일어는 큰 무리없이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해본다. 학교에서 자원봉사 할머니들로부터 잘한다 소리도 듣는다.

근데 불안하다. 왜 불안하냐면 결국 이런거다. 내가 남의 나라말 하나도 제대로 못한채 평생을 마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일어하나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인가하는 갈림길에 서있는 셈이다. 일까지 쉬어가며 얻은 이 1년간에 판가름 나는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좀 쪽팔리잖아. 1년씩이나 공부하라고 시간을 줬는데 그 모양이냐는 소리는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지금 솔직히 좀 안달이 나 있는 상태다. 외워야할 단어는 하루에 백개씩은 되는 것 같고, 리스닝도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고. 특히 TV 쇼프로 같은 걸 보면 통 못알아듣겠다. 말은 더 자신이 없고. 선생님이 작문을 시키면 머라머라 처음에는 잘 나가다 꼭 말끝이 흐려진다. 집에서 혼자 독학으로 하던 실력이다 보니 말할때 늘 문법이 머리속에서 헷갈린다. 

여기서 박사과정을 하는 어떤 친구는 6개월만 지나면 괜찮아진다는데 정말 그렇게 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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