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불어나는 사태와 관련해 원자력 전문가들은 사고 초기부터 원전 건물 둘레에 차수벽을 설치해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고여 있는 원전 건물에 지하수가 유입돼 섞이는 것을 방지하라고 지적해왔다. 하지만 사고 초기 언론에 잠시 언급된 이후 차수벽 문제는 유야무야됐다.
오염수 사태가 심각한 재앙으로 번진 최근에서야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막대한 공사비로 주주들의 비판을 살 것을 우려한 도쿄전력이 차수벽 설치를 계획적으로 유야무야시킨 것이다.
마부치 스미오(馬淵澄夫) 민주당 중의원은 원전사고 2주 뒤인 2011년 3월26일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의 원전사고담당 보좌관에 취임한 직후부터 오염수 대책에 착수해 두 달 뒤 차수벽 설치계획을 마련했다. 마부치 의원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6월11일 현장을 방문해 당시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 현장소장과 차수벽 설치구역까지 획정했다”고 말했다.
이 계획은 6월14일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2주 뒤 주주총회를 앞둔 도쿄전력은 뒤집기에 들어갔다. 무토 사카에(武藤榮) 당시 부사장이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 당시 경제산업상을 만나 언론 발표를 미뤄줄 것을 요청했다. 공사비가 1000억엔대에 달하는 막대한 사업을 발표할 경우 시장으로부터 채무초과라는 평가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댔다. 결국 언론 발표는 미뤄졌고, 대신 무토 부사장은 마부치 보좌관에게 “지체없이 추진하겠다”고 구두약속했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앞에 있는 도쿄전력 직원들 (경향DB)
하지만 2주 뒤 도쿄전력의 주총이 열리던 6월28일 간 총리는 원전사고수습담당상을 신설해 별도의 인사를 임명했고, 차수벽 설치에 의욕을 보여온 마부치는 총리보좌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석연치 않은 인사에 도쿄전력이 간여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건 차수벽 계획은 유야무야됐다. 가이에다 현 민주당 대표는 “도쿄전력의 경영이 파탄날 경우 피해자 손해배상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고 변명했지만 국비를 투입해 수습하는 방안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음을 방증했다.
2년 전 즉시 공사에 착수했더라면 오염수 유출사태는 최소화됐을 것이지만 주주와 자본시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장기업의 경영논리가 사태를 악화시킨 것이다. 오염수 사태는 공공부문의 민영화에 ‘사고수습의 민영화’가 인류에게 재앙을 안긴 사례로 기록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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