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도쿄전력이라는 괴물

서의동 2013. 10. 31. 16:27

일본인들은 자국을 위협하는 집단으로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에서 충돌을 빚고 있는 중국이나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을 들고 있지만 그보다는 도쿄전력, 정확히는 ‘주식회사 체제인 도쿄전력’을 더 현실적인 위협요인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원자력발전은 ‘국책민영(國策民營)’ 구조로 운영돼 왔다. 정부가 중장기적인 원전정책을 세우면 민간기업이 원전을 짓고 돌리는 식이다. 정부는 전력회사의 지역독점 체제를 보장하고 공사비는 전기요금으로 벌충하도록 지원해왔다. 발전비용에 일정한 이윤을 곱하는 총괄원가방식으로 전기요금이 산정되는 만큼 전력회사 입장에서는 원전을 지으면 지을수록 유리하다. 


또 하나 특징은 원전사고가 날 경우 전력회사가 배상할 수 있는 한도액이 고작 1200억엔(약 1조3000억원)으로 원자력손해배상법에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처럼 초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원조’할 수 있다고는 돼 있지만 구체적 규정은 없다. 원전사고 직후 법개정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 기묘한 시스템하에서 전력회사는 두 가지 행동패턴을 보여왔다. 우선 원전을 계속 지으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일본경제가 1990년대에 정점을 찍은 뒤에도 일본은 원전 신증설에 매달렸다. 지금도 아오모리(靑森)현 오마(大間) 원전을 비롯해 3기가 건설 중이고, 9기는 계획 중이다. 


또 하나는 배상한도가 작고 정부의 지원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대규모 사고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해왔다는 점이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전까지 일본의 전력회사들은 대규모 사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돼 왔다”고 지적한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도쿄전력은 기업논리를 따라 움직였다. 방사능 오염수 문제에 대비해 원전건물 둘레에 차수벽을 설치하자는 지적이 제기됐고, 이에 따라 사고 두 달 뒤 총리실 주도로 차수벽 설치계획이 거의 만들어졌다. 하지만 주주총회가 임박하자 도쿄전력이 막대한 공사비가 드는 이 사업의 발표연기를 요청했고, 차수벽 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정부인사가 의문의 경질을 당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방사능 오염수 처리 현장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다. 극도로 위험한 작업환경임에도 도쿄전력이 비용절감을 위해 작업원의 일당을 깎아버려 불만을 느낀 작업원들이 현장을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쿄전력은 “인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강변해오다 지난 28일 히로세 나오미(廣瀨直己) 도쿄전력 사장이 처음으로 “작업원 확보가 곤란하다”고 실토했다. 민간기업 생리상 이익전망이 없는 사고처리에 돈을 제대로 쓸 리 만무하지만, ‘사고처리의 민영화’가 환경재앙을 확대시키고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도쿄전력은 최근 니가타현 가시와자키가리와(柏崎刈羽) 원전의 재가동을 서두르고 있다. 화력발전 대신 원전을 돌리면 비용이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이 발전소는 2007년 7월 발생한 규모 6.8의 지진으로 변압기가 불에 타는 사고를 겪었고, 발전소 부지가 활성단층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두부 위에 지어진 원전’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지만 도쿄전력은 안전하다고 강변한다.


이런 꼴을 보다 못해 도쿄전력을 파산시키자는 지적이 나오지만 원전에서 이익을 챙겨온 ‘원전 마피아’들의 입김 때문인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식회사 도쿄전력’이라는 괴물을 그대로 두는 한 일본은 두고두고 인류에 ‘메이와쿠(迷惑·폐)’를 끼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