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 ‘코리안타운’으로 불리는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의 한 공연장에서 ‘K팝 대 NK팝’ 대결이라는 이벤트가 벌어졌다. K팝은 물론 한국음악이지만, NK팝은? 놀랍게도 북한(North Korea)음악이다. 60여명 남짓 모인 행사는 ‘북한판 소녀시대’로 불리는 모란봉악단과 한국가요를 비교하며 한류전문가와 북한음악 매니아가 해설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최 측은 대결 결과 NK팝의 승리를 선포했다. 행사 자체도 경악할 일인데다 ‘한류의 성지’인 신오쿠보에서 벌어진 것도 충격이다. 일본 내 극소수 ‘사회주의 매니아’나 ‘북한 오타쿠’들의 이색 취미라고 넘어가기엔 찜찜하다.
일본사회의 NK팝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등장한 모란봉악단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란봉악단은 K팝 걸그룹을 방불케하는 대담한 의상에 북한에서 금기였던 미국 팝송을 불러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지만, 일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한·일 관계 악화로 K팝붐이 꺼져가던 시점과 겹친다. 올들어선 일본 민영TV가 NK팝을 다루는가 하면 인터넷 언론들은 모란봉악단을 소개하는 기사를 올리기도 한다. 일본의 북한전문 인터넷매체들은 김정은 체제에는 비판적이지만 북한음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 않다. 한글에 익숙지 않으니 체제선전 일색인 가사는 관심대상이 아닌 듯 하다. NK팝의 신오쿠보 상륙은 한·일 갈등으로 혐한(嫌韓)정서가 심화되는 일본 사회의 단면이다.
얼마 전 만난 지한파 기자는 “한·일관계가 이명박 정부 말기에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그의 대학생 딸도 최근 친구들과 한국 비판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에 인기를 모으는 구 왕실 출신의 우익 논객 다케다 쓰네야스(竹田恒泰)는 “중국은 강대국이니 일본이 전략적으로 대응해야겠지만, 한국은 경제 규모에서 도쿄보다도 작으니 아예 무시하는 편이 낫다”며 ‘한국포기론’을 설파한다.
보통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는 해방 이후 수십년간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다 2003년 TV드라마 <겨울연가> 방영을 계기로 한류붐이 일면서 급격히 상승해 지난해 초 절정에 달했다가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계기로 급전직하했다. 겨울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일본 사회에선 관계회복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결과적으로 더 나빠졌다. 지난해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K팝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을 때 “지금 분위기는 일과성이다. K팝은 일본에 확고히 자리잡았으니 곧 회복될 것”이라고 낙관하던 앞의 기자는 “잘못 이야기한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점심시간을 전후로 도쿄시내 전철 매점에는 연일 반한기사를 싣는 석간 타블로이드신문의 지면을 소개하는 광고문이 붙는다. ‘한국경제 곧 침몰’ 같은 황당무계한 제목들이 멀리서도 선명하다. 도쿄시내에만 수천개에 달하는 역구내 매점들이 오후만 되면 ‘반한(反韓)’ 광고탑이 된다. 전철에 오르면 ‘반한’ 기사들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는 주간지 광고들과 마주친다.
한국에 대한 반감은 납치한 일본인들을 돌려주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에 다를 바 없는 수준이 돼 버렸다.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의 회담은 외면하면서 미국, 중국, 영국 등을 방문해 일본을 비판하는 것에 일본에선 ‘고자질(告げ口)외교’라는 극언까지 나온다. 이 반한정서는 관계 정상화가 되더라도 쉽게 사라지기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의 반일정책으로) 일본 사회에 ‘재특회 예비군’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는 어느 한국 전문가의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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