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북아의 새로운 섬, 한국

서의동 2013. 12. 12. 10:53

그다지 좋아하는 용어는 아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기준으로 요즘 한국사회를 본다면 참담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5위인 나라에서 국가정보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따지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미국의 ‘워터게이트’를 능가하지만 1년이 돼가도록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보장을 희생해가며 막대한 국방비를 쏟아부었음에도 군은 작전권을 미국이 갖고 있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정부는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초일류기업 삼성은 아직도 노조를 적으로 몰고 있다. “툭 하면 파업할 것”이라며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한 여당 의원의 사고방식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정치, 경제, 사회의식 중 어느 하나라도 세계 보편적 기준을 충족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한때 일본 정보기술(IT)산업의 독자적인 진화양태를 반쯤 놀리는 용어로 쓰이던 ‘갈라파고스화’는 요즘 한국 사회의 퇴행을 설명하는데 오히려 더 적합해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시민권을 얻으려면 ‘반북’과 ‘반일’을 바닥에 깔고 들어가야 한다. 정권은 카드판의 ‘조커’처럼 수세에 몰리면 어김없이 ‘종북’ 카드를 꺼내 판을 흔든다. 북한에 호의적인 태도나 호기심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정권 비판 세력까지도 종북으로 버무려 몰아붙이는 수상한 시절이 됐다. 


숱한 의혹이 해명되지 않은 채 공판이 진행되고 있는 천안함 침몰사건은 ‘종북’ 여부를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혹은 근세 일본에서 기독교 신자를 탄압할 때 쓰던 ‘후미에(踏繪·신자인지 구분하기 위해 밟도록 한 예수그림)’가 됐다. 백번 양보해도 잘 납득이 안가는 군 당국의 발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간 ‘대한민국 국민’ 자격을 박탈당할 우려가 있다.  

 

‘반일’ 카드는 부담도 없을 뿐 아니라 위력적인 ‘꽃놀이패’다. 한국에 온 탈북자가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사회의 반일정서는 도를 넘어섰다. 반일정서가 고양된데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불철저한 사과와 반성이 근본원인이지만, 해방후 ‘친일청산’을 못한 스스로의 잘못도 크다. 하지만 우리는 ‘내 눈의 들보’를 보려 하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보건 ‘반일’이면 용서가 되니 모처럼 방일한 정치인들이 출처불명 일본 주간지 기사를 이유로 오찬 행사에 불참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반북’과 ‘반일’로,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한 북한·일본과 대화가 단절됐다. 얼마전 화산폭발로 새로운 섬이 일본에서 탄생했듯, 마그마처럼 솟구치는 반북·반일 에너지는 한국을 동북아의 외딴 섬으로 바꿔놨다. 아프리카 모리셔스 섬에 살다 멸종된 도도 새의 날개처럼 ‘섬 주민’들의 생각도 급속히 퇴화해간다. 기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꿈은 10년전만 해도 현실감을 띠었지만, 지금은 앞으로 몇십년이 지나도록 이루지 못할 것 같다. 

 

글로벌한 감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제 인권에 대한 가치조차 망각해 버린 듯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의 서거에 박근혜 대통령은 뒤늦게 추도문을 내고 조문사절로 국무총리를 보내는데 그쳤다. 부친의 정적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연상돼서였을까? 한때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취했다고 평가받던 나라지만 요즘 들어 한국에 자긍심을 느낀다는 이들은 주변에 많지 않다. 겨울 스모그처럼 짙은 체념과 자조, 냉소가 동북아의 새로운 섬, 한국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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