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반원전' 탤런트 정치인 야마모토 다로, 일왕에게 편지 전달했다 '불경죄' 논란

서의동 2013. 11. 1. 21:19

일왕에게 편지 전달은 불경죄?

ㆍ일 보수 정치권, 후쿠시마 실상 전한 초선의원에 사퇴 요구

반원전 활동을 벌여온 탤런트 출신 일본 초선의원이 파티장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에게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의 실상을 알리는 서한을 전달해 일본 정가에 광풍이 불고 있다. ‘반골’ 기질이 강한 초선의원을 탐탁지 않게 여겨오던 보수 정치인사들은 ‘불경죄’를 물어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고, 우익단체들은 항의시위에 나서는 등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무소속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郞·38·사진) 참의원 의원은 지난달 31일 오후 도쿄 아카사카교엔(赤坂御苑)에서 열린 가든 파티에서 아키히토 일왕에게 직접 편지를 전달했다. 일왕 부부가 주최한 이 파티에는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종신 명예감독인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雄)와 지난 5월 80세 나이에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한 미우라 유이치로(三浦雄一郞) 등 문화·체육계 공로자들과 국회의원, 관료 등 1800여명이 참석했다. 야마모토 의원은 일왕이 파티장을 돌며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눈 뒤 자신 쪽으로 다가오자 전날 붓글씨로 쓴 A4용지 10장 분량의 편지를 직접 전달했다. 일왕은 편지를 일단 받은 뒤 수행 중인 시종장에게 전달했다.

탈원전 운동을 벌여온 탤런트 출신의 일본 정치인 야마모토 다로가 지난달 31일 도쿄 아카사카 궁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해 아키히토 일왕(가운데)에게 인사하면서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의 실상을 알리는 편지를 전하고 있다. | AFP


야마모토 의원은 행사 뒤 기자회견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상황을 전했다”며 어린이들의 피폭에 따른 건강 우려, 현장 근로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등을 담았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면 편지의 내용을 공개했을 것”이라며 정치적 이용 목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야마모토는 파문이 커지자 1일 참의원 운영위원회에서 경위를 설명하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으나 보수 정치권은 자국민들에게 추앙받는 존재이자 정치 개입이 금지된 일왕에게 ‘무엄하게’ 편지를 전달한 야마모토 의원을 아예 퇴출시키려 움직이고 있다. 

아베 내각 각료 중 강경보수로 분류되는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은 1일 “이런 일을 용인하면 앞으로도 천황(일왕)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일이 발생한다”며 의원직 사퇴 사유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와키 마사시(脇雅史)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도 이날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고,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은 “일본 국민이라면 법률에 써 있지 않더라도 해서는 안될 일임을 안다. 폐하(일왕)에 대해 그런 태도는 있어서는 안된다. 믿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참의원 운영위원회는 5일 이사회를 열어 야마모토 의원에 대한 징계조치를 결정할 예정이다.

혐한·우익단체인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는 “불경 의원 야마모토의 사직과 탈일본을 요구한다”면서 도쿄 시내에서 가두선전 활동을 벌이며 가세했다.

고교 시절부터 TV 탤런트와 영화배우 등으로 폭넓은 활동을 벌여온 야마모토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직후부터 원전 반대 시위에 참가했으며, 이를 계기로 정치가로 변신한 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