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학생 도쿄원정대' 인상기

서의동 2014. 2. 13. 12:16

‘2·8 조선청년 독립선언 95주년 맞이 대학생 도쿄원정대’가 지난주 일본을 다녀갔다. 2박3일 동안 내각부 항의 방문, 2·8독립선언 재연 등 일정을 소화하면서 학생들은 보고 느낀 것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을 지켜보면서 ‘반일운동’ 방식이 업그레이드돼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선 주요 목적인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반대 퍼포먼스는 끝내 무산됐다. 학생들이 일본 방문 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야스쿠니에서 퍼포먼스를 벌인다고 하는 소식에 재특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특별소집 공고를 내렸다. 지난 7일 오후 야스쿠니신사를 둘러보니 곳곳에 우익단체 회원들이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포진해 있었다. 일본 경찰로서는 충돌 방지를 위해 대학생들의 야스쿠니행을 막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by 서의동


일본 경찰이 과잉통제한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대학생들이 한국의 독도를 방문하겠다고 예고하고 한국을 찾았다면 아마 공항에서부터 입국금지를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베 내각의 총무상인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등 일본 국회의원 등 3명이 2011년 8월 울릉도를 시찰하겠다고 했을 때 한국 정부는 이들을 김포공항에서 돌려보냈다. 경찰이 야스쿠니행을 막지 않았다면 폭력배나 다름없는 우익단체들과의 충돌로 큰 불상사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의 제지로 대학생들을 태운 버스는 신사에서 수백m 떨어진 곳에서 운행이 중단됐고 이때부터 실랑이가 벌어졌다. 버스에서 내리지 못한 학생들은 "관광객 누구나 가는 곳인데 왜 우리만 못 가게 하느냐"며 영어와 일본어로 쓰인 플래카드와 손팻말을 들고 일본의 우경화를 규탄했다. 30분쯤 대치한 끝에 경찰은 플래카드 없이 야스쿠니가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 사진 찍는 조건으로 하차를 허용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린 대학생들이 플래카드를 꺼내들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학생들이 보도에 주저앉으니 경찰들은 강제로 태우려 했고 일부 학생들은 옷이 찢기거나 작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벌이려던 퍼포먼스의 취지와 충정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좀 더 세련된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아시아의 평화를 원한다’면서 ‘원정대(遠征隊)’라는 이름을 내건 것도 어색했다. 원정은 평화와 거리가 멀지 않은가. 시위와 퍼포먼스의 목적은 여론 환기에 있다. 일본 여론에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의 문제점을 인식시키려는 게 이번 퍼포먼스의 목적이었다면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인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할 뿐 한국 대학생들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지켜보는 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유창한 일본어로 당당하게 주장하는 학생들이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지 모른다. 결국 한국 대학생들의 외침은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돼버린 채 ‘국내전용’ 뉴스거리가 되고 말았다. 경찰이 학생들을 끌고 버스로 향하는 사진들이 온라인을 타고 전해지면서 반일감정을 자극했고 한국 누리꾼들은 들끓었다.


여기까지 읽고 ‘그럼 일본의 우경화를 그냥 앉아서 지켜보자는 말이냐’며 화를 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방관하자는 게 아니라 다른 효율적인 운동 방식을 궁리해보자는 것이다. 대학생답게 보다 창의적이고 날카로운, 그러면서도 일본인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왜 없겠는가. 예를 들어 혐한 발언을 일삼는 재특회 회장을 만나 끝장토론을 벌이는 이벤트를 기획한다든가, ‘한국 때리기’를 일삼는 보수언론사를 항의 방문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많은 시부야 같은 곳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더라면 학생들의 주장을 훨씬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지 않았을까. ‘진입시도→원천봉쇄→몸싸움→강제해산’이라는 1980년대 감성으로 반일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이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