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친근한 아베씨

서의동 2014. 1. 2. 16:50

신년 첫날 산케이신문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연두 대담 기사가 2개면에 걸쳐 실렸다. 상대는 일본의 ‘국민 아이돌 그룹’ AKB48의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 한국으로 치면 소녀시대를 기획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쯤 되는 인물이다. 대담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의 매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대중문화 콘텐츠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로 시작해 아베 집권 1년의 치적을 은근히 자찬하는 것으로 이어졌지만, 집권 2년차를 맞은 일국의 정상이 연두부터 대중문화계 인사와 무릎을 맞댄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지난달 30일 민영방송인 니혼TV의 오락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민 아베는 부인인 아키에(昭惠)여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가정의 행복은 아내에게 항복하는 것”(행복과 항복은 일본어로는 ‘고후쿠’로 같은 발음)이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이어 ‘가정내 야당’을 자처하는 아내와는 대결하지 않는 것이 ‘아베가의 교훈’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12월30일 니혼TV 출연장면 출처=http://natalie.mu


지난해 12월 알권리 침해 우려가 큰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 통과시키고, 내친 김에 야스쿠니(靖國)신사를 기습 참배하면서 국내외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아베 총리는 외국에선 ‘국가주의 신념’으로 무장한 괴물 정치인으로 비치지만, 일본 국민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보다는 ‘싹싹한 표정으로 국민에게 뭔가 열심히 설명하는 정치가’의 이미지가 일반적이다. 전임인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불퉁한 인상과 달리 호감가는 마크스도 한몫한다. 본성이 받쳐주지 않는 한 한계가 있는 만큼 매스컴을 동원한 ‘이미지 조작’이라고 폄훼하기도 어렵다.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 통과시킨 여파로 한때 40%대로 추락했던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연말에 50%대를 다시 회복(교도통신 조사 55.2%)한 것은 아베노믹스로 경기회복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점이 크지만, 아베 총리의 이미지도 한몫한다. 한국에선 아베가 입주변에 피칠갑을 한 채 일장기를 반쯤 베어물고 있는 섬뜩한 광고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일본에선 먹혀들기 어렵다. 

 

야스쿠니 참배를 두고 해외에선 특정비밀보호법으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포털서비스 야후재팬의 여론조사에서 야스쿠니 참배를 지지하는 응답이 76%에 달하는 걸 보면 그 분석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일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아베가 1년간 참배를 자제했는데도 한국, 중국이 대화에 응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옹호론이 적지 않다. 


‘립서비스’일 뿐이지만 아베가 틈날 때마다 한국과 중국에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는 말을 반복한 것도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과거 군국주의를 재현하겠다는 시커먼 속을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싹싹한 표정으로 열심히 자신의 주장을 반복해 설명하는 친절한 아베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 평화체제 옹호를 부르짖는 일본의 진보세력은 낡고 쇠약해 있다. 전후 수십년간 거의 변하지 않는, 낡고 상상력 부족의 운동방식에 유권자들은 흥미를 잃은지 오래다. 오히려 1945년 패전 이후 봉인된 ‘애국심’과 ‘보통국가론’을 내건 아베와 일본 내 우파들의 외침에 일본인들은 더 솔깃해 한다. 


한국 일각에선 우경화에 대응해 일본의 시민사회 및 양심세력과 연대하자는 ‘주변부 공략론’이 나오지만, 일본의 바닥민심을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의문이다.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에도 불구하고 대일정책의 해법은 여전히 ‘본진을 돌파하는 정공법’ 즉, 정상간의 대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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