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아베 헌법 개정 움직임에 맞서는 일본 주부 “평화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주자”

서의동 2014. 1. 3. 20:50

ㆍ추상물은 대상 안돼 일본 국민을 후보로

ㆍ인터넷 추천 서명 운동… 2500여명 참여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개헌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헌법을 지켜온 일본국민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대하자는 운동이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이 ‘전쟁의 대륙이었던 유럽을 평화의 대륙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는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만큼 ‘일본을 전쟁에 휩쓸리지 않도록 한 평화헌법을 70년 가까이 유지해온 일본국민’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 그 논거다.

이 운동을 추진 중인 ‘헌법9조 노벨평화상 실행위원회’가 설치한 인터넷 서명사이트에는 3일 오후 10시 현재 2500여명이 서명했다. 다음달 1일 노벨평화상 추천마감을 앞두고 1만명의 서명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위원회는 취지문을 통해 일본국민은 “전쟁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전쟁의 포기, 전력의 불보유를 규정한 헌법을 전후 70년 가까이 유지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안정에 공헌했다”며 “개헌위기에 직면한 지금 세계평화를 위해 헌법의 취지를 살리고, 확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헌법9조 노벨평화상 실행위원회’가 전개 중인 서명 페이지. 원폭구름으로 상징되는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 번영해온 일본을 형상화한 그림 아래에 “세계각국에 평화헌법을 확산시키기 위해 일본국 헌법, 특히 9조를 지켜온 일본국민에게 노벨평화상을”이라고 쓰여 있다. | ‘헌법9조 노벨평화상 실행위원회’ 화면 캡처


이 운동의 산파역은 가나가와(神奈川)현 자마(座間)시에 사는 전업주부 다카스 나오미(鷹巢直美·37). 도쿄신문에 따르면 다카스는 호주 유학시절 세계 각지에서 온 전쟁난민들을 접하며 “일본이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평화헌법 덕분”임을 깨달은 것이 계기가 됐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지난해 1월부터 ‘헌법9조에 노벨상을’이라는 캠페인을 전개해 모은 서명을 노벨위원회에 보냈으나 ‘개인이나 단체라면 몰라도 헌법 같은 추상물은 후보가 될 수 없다’는 답신이 왔다. 낙망한 다카스에게 문득 떠오른 생각이 “개인이나 단체가 자격이라면 ‘헌법9조를 보유해온 일본국민’도 자격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역 시민단체와 뜻을 모아 지난해 8월 실행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실행위 관계자들은 “처음엔 황당하게 느껴졌지만 운동을 전개해가면서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려면 국회의원·관료, 대학총장, 사회과학·역사학 분야의 대학교수, 평화·외교정책 연구소장 등 일정 자격을 갖춘 추천인이 필요하지만 서명운동이 확산되면서 추천인들의 참가도 늘어나고 있다. 고베쇼인여자학원대학의 가쓰무라 히로야(勝村弘也) 교수는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을 포기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지만, 개헌으로 이를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에 젊은층의 관심이 희박하다”면서 “이 운동이 일본의 토대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2년 뒤인 1947년 5월3일 시행된 일본 헌법은 9조에서 ‘일본국민은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 이를 위해 육해공군 및 여타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