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에 들일 돈이 있다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수습과 피난주민들에게 써야 마땅합니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발생 3년(11일)을 앞두고 경향신문이 지난달 28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에서 근무한 해고노동자를 단독으로 만나 사고수습의 난맥상과 일본 정부의 원전사고 대응의 문제점을 들었다. 2012년 1월부터 10월말까지 근무하다 해고된 뒤 원전노동자 지원단체에서 활동 중인 고보(가명·30대 중반)는 “사고현장은 일본의 불안정노동의 구조적 문제가 응축돼 있는 곳”이라면서 “다단계 하청구조하에서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다 버려지는 체제 속에선 온전한 사고수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은 원전운영사인 도쿄전력(발주기업)과 원청업체인 대기업, 그 아래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다단계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핀하네(ピンハネ)’로 불리는 임금 가로채기가 이뤄지고 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니 오키나와, 홋카이도에서까지 노동자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방사선량이 시간당 수백밀리시버트(mSv·성인 기준치는 연간 1mSv)에 이르는 건물 내 잔해처리 작업 등에 동원됐다가 피폭돼 이르면 2주일 만에 해고된다.
고보는 “근로자들이 자주 교체되는 탓에 오염수 유출, 정화장치 작동중단 등 실수에 따른 사고가 빈발한다”며 “도쿄전력이나 대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 안정성을 높이고, 의료·생활보장 대책을 마련하는 등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사고수습 작업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보가 속한 ‘피폭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는 2~3월을 ‘피폭노동자 춘투’기간으로 정해 오는 14일 도쿄전력과 관련부처를 상대로 임금체불,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항의행동에 나선다. 원전사고 3년을 맞아 사고현장의 노동문제가 일본 사회의 현안으로 본격 떠오르게 되는 셈이다. 고보는 “먼저 일본 정부는 원전사고가 수습됐다는 거짓말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ㆍ(1) 후쿠시마 원전 해체 작업 노동자 단독 인터뷰
“원전 노동자는 ‘광산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이지요. 가스중독으로 먼저 죽어 인부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에 들일 돈이 있다면,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수습과 피난주민들에게 써야 마땅합니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발생 3년(11일)을 앞두고 경향신문이 지난달 28일 도쿄 시내 한 음식점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에서 근무한 해고노동자를 단독으로 만나 사고 수습의 난맥상과 일본 정부의 원전사고 대응의 문제점을 들었다. 2012년 1월부터 10월 말까지 근무하다 해고된 뒤 원전노동자 지원단체에서 활동 중인 고보(가명·30대 중반)는 “사고 현장은 일본의 불안정노동의 구조적 문제가 응축돼 있는 곳”이라며 “다단계 하청구조하에서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다 버려지는 체제 속에선 온전한 사고 수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은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발주기업)과 원청업체인 대기업, 그 아래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다단계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핀하네(ピンハネ)’로 불리는 임금 가로채기가 이뤄지고 있다. 홋카이도(北海道)나 오키나와(沖繩)에서까지 노동자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방사선량이 시간당 수백m㏜(밀리시버트·성인 기준치는 연간 1m㏜)에 이르는 건물 내 잔해처리 작업 등에 동원됐다가 피폭돼 이르면 2주일 만에 해고된다.
고보는 “노동자들이 자주 교체되는 탓에 오염수 유출, 정화장치 작동 중단 등 실수에 따른 사고가 빈발한다”며 “도쿄전력이나 대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 안정성을 높이고, 의료·생활보장 대책을 마련하는 등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사고 수습작업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보는 사진촬영은 물론 신원공개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 사고 수습 노동자 잦은 교체 오염수 유출 등 사고 빈발
“주민들이 보면 귀환 꺼린다” 간단한 방호복으로 바꿔
옷 찢고 대소변 해결… 다단계 하청구조가 안전 위협
- 언제부터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에서 일했고, 어떤 일을 했나.
“아는 이의 소개로 2012년 1월부터 10월 말까지 일했다. 원전사고수습본부가 있는 면진 중요동에 딸린 가건물에서 원전 노동자들의 방사선 관리를 맡았다. 작업원들의 장비 착용을 도와주거나 방사선량 측정기를 나눠주고 회수한다. 방호복과 장화를 벗고 난 뒤 하루 피폭량을 체크한다. 외부 현장에는 나가지 않았다.”
- 방호복과 마스크를 쓰더라도 피폭을 피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중장비를 몸에 걸치고 여름에 작업하면 장갑과 안면 마스크가 물범벅이 된다. 시야가 흐려져 마스크를 도중에 벗는데, 그러면 피폭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실내에서 근무했지만 정전이 잦아 실내에서도 땀범벅이었다. 나중에는 마스크를 벗고 일을 했다. 방호복을 가위로 찢다가 베는 경우도 있는데, 내부피폭이 우려되지만 선량계로 재본 뒤 반창고만 붙이고 만다. 처음엔 주의했지만 점차 ‘혼자 호들갑 떤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신경해진다.”
고보는 2011년 12월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사고 수습 선언을 한 뒤로 장비의 간소화가 추진됐다고 했다. “작업원들이 중장비를 착용하는 모습이 피난한 주민들의 귀환에 장애가 된다고 본 것 같습니다. 전면 마스크와 방사성 요오드를 걸러내는 필터가 수습 선언 이후에는 반면 마스크와 방진 필터로 교체됐어요. 장비가 간소화되면서 노동자들은 덤으로 피폭됐죠. 사고 수습 선언 전에는 형식적이나마 암 검사도 받았지만, 이것마저 없어졌습니다.”
- 왜 10개월 만에 그만뒀나.
“대부분 20m㏜가량 피폭되면 여러 이유를 붙여 해고한다. 작업원들의 연간 허용피폭량은 50m㏜이지만 나중에 건강 이상이 발생했을 때 책임지지 않으려고 미리미리 잘라내는 것이다. 처음엔 일당 1만엔(약 10만원)에 숙소와 조·석식비는 회사가 부담하도록 돼 있다가 도중에 숙식비 지원이 끊겨 항의하자 갑자기 ‘한 달 뒤 해고’ 통보를 받았다.”
- 어떤 작업이 가장 위험한가.
“폭발이 난 건물 내부작업과 부지 잔해처리가 피폭량이 가장 높다. 2주 만에 잘리는 이들도 있다. 노동자 교체가 빈번하다 보니 실수로 전원을 자르거나 배관을 잘못 건드려 오염수를 뒤집어쓰는 일이 다반사다.”
- 노동자들 간에 의사소통은 제대로 되는가.
“회사 일을 입 밖에 내다 도쿄전력이나 원청업체에 찍히면 잘린다. 숙소 부근 술집에도 가지 말라고 교육받는다. 동네 전체에 ‘관계자’들이 깔려 있고, ‘스파이’도 많기 때문이다. 도쿄전력에 항의하면 당사자뿐 아니라 소속 회사마저 사업계약이 해지돼 동료들까지 연대책임을 진다. (익명으로) 상담센터에 불만을 제기하면 해당 회사에 ‘직원 교육 잘 시키라’고 통보한다. 그러면 범인 색출이 이뤄진다. 원청업체 직원에게 맞는 경우도 있지만 대들면 ‘아웃’이니 참는다. ‘침묵과 복종’의 시스템이 확립돼 있다.”
고보는 “다단계 하청구조의 피라미드 속에서 노동자들은 위험수당도 못 받고 착취당하다 버려진다”며 “불안정 노동의 전형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고보는 원전 작업을 그만둔 뒤 피로·권태감과 우울증, 피부감각 상실로 여름에도 추위를 타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전사하면 야스쿠니신사에서 신으로 모셔진다고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듯, 원전 노동자들도 한때 구국의 영웅처럼 떠받들어지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피폭돼 해고된 이들의 장래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원전 노동을 전쟁에 비유했다.
고보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을 국가 대사로 생각한다면 원전 노동자들이 피폭된 뒤에도 생활보장이 되도록 하고, 작업도 노동자의 안전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고보가 속한 ‘피폭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는 2~3월을 ‘피폭노동자 춘투’ 기간으로 정해 오는 14일 도쿄전력과 관련 부처를 상대로 임금체불,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항의행동에 나선다. 원전사고 3년을 맞아 사고 현장의 노동문제가 일본 사회의 현안으로 본격 떠오르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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