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7일자 지면에 실린 기자보다 조금 긴 원문입니다.
박주민은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큼지막한 백팩에 치약·치솔, 물티슈, 휴지 따위를 챙겨 다닌다. 언제 어디서 ‘노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는 세월호 유족들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사흘, 지난 9월에는 백남기 농민이 누워있던 서울대 병원에서 이틀을 보냈다. 잠이 모자라면 아스팔트, 병원 탁자, 본회의장 가리지 않고 곯아 떨어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국회표결을 앞두고 국회로비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불펴고 철야하는 사진이 돌자 ‘민주당이 박주민 때문에 거지당이 돼 간다’는 글이 달렸다.
부스스한 머리, 넓은 이마에 선명한 주름살, 약간 졸려 보이는 눈매는 온라인 ‘드립’의 딱 좋은 소재다. ‘노숙자처럼 초췌한 모습, 만성 수면부족, 피로의 제왕, 상시 시위대기중‘ ’저 거지는 뭐야. 국회의원입니다‘ 등등.
@박민규 선임기자
하지만 이미지는 보조축일 뿐 시민들이 정작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성실성이다. 등원 반년만에 그가 낸 법안은 34건으로 20대 국회의원 중 단연 압도적이다. 본회의, 상임위 출석률은 100%다. 원내활동 뿐 아니라 거리의 정치현장에 빠지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의 바쁜 일정과 별도로 박주민은 바삐 움직였다. 이화여대, 중앙대, 연세대, 명지대 시국강연, ‘대통령의 7시간’ 추적 토크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에 대한 페이스북 라이브 토론, 광화문 촛불집회 참석, 박근혜 퇴진 서명운동 등. 일정을 좇다 만난 대학생은그를 지지하는 이유를 묻자 “우리중의 한명 같은 느낌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2일과 탄핵투표가 가결된 뒤인 11일 두차례 박주민을 만났다. 여의도 의원회관 544호 명패에는 노란색의 큼지막한 세월호 추모 리본이 붙어 있다. 박 의원은 정치인이 된 뒤의 자신을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할 때 생각했던 것을 이루기 위해 허겁지겁 걷고 있는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정치인이라면 가질 법한 ‘큰그림’은 나중 얘기고 우선 “세월호 해결과 민주주의의 실질화를 위한 제도개선을 위해 전력투구하겠다”고 했다.
-많이들 궁금해 하는데 백팩에 뭐가 들었나.
“작업용 노트북, 치약·치솔과 물티슈, 책 두권과 발의관련 법안자료 같은 읽어야 할 서류다.”
-치약·치솔, 물티슈는 왜 챙기나.
“10년간 변호사하면서 습관이 됐다. 당일치기로 제주 강정마을을 내려갔다가도 바로 못올라오는 경우가 많은 거다. 세월호 유족과 경찰하고 맞붙을 때도 바로 안끝날 때가 많아 잘 준비를 하고 다닌다.”
-쪽잠을 잘 자는가.
“집에 11시~12시쯤 들어가도 낮에 못본 자료들을 1시간반~두시간 가량 본다. 아침에 일어나 국회에 5시50분에서 6시에 도착하니 잠이 모자란다. 차안이나 소파에서 잠깐씩 잔다.”
-학교때 사진과 외관이 달라진 느낌이 든다.
“사실 가발을 쓰고 있다. 선거운동 첫날 명함을 돌렸는데 분장이 잘된 탓인지 아무도 나라고 생각 안하더라. 명함을 버리느니 가발 쓰기로 했다. 결혼할 때 짝궁(부인)에게 ’바람 안피우고 ‘가발 안쓰겠다’고 했지만 부득이 양해를 구했다.”
-변호사 시절 매일 책을 두시간씩 읽는다는 기사를 봤다.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있나.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면서도 매일 아침 일찍 도서관에서 두시간 가량 책을 읽었다. 변호사 시절에도 늘 책을 갖고 다녔다. 최근에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생>. 내 마음이나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존 로크의 <통치론>도 다시 읽고 있다. 많은 분들이 박근혜 이후 사회는 어떤 것인지, 시위가 꼭 평화적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좀더 철학적으로 이야기해줄 건 없을까 생각하다 보게 됐다.”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뭐였나.
“변호사로 현장을 다닐 때마다 법이 제대로 돼 있으면 사람들이 고통을 안받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정치할 생각은 없었는데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200석, 야당 괴멸’이란 예상이 돌던 지난해 12월쯤 ‘도와달라’는 제안이 왔다. ‘세월호 유족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과, 앞으로 하려는 일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주민이 국회의원이 된 건 ‘기적’에 가까웠다. 4·13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했지만 사실상 ‘방치’됐다가 연고도 없는 서울 은평갑에 뒤늦게 공천됐다. 야당단일화도 막판에 가까스로 이뤄졌다. 고 김관홍 잠수사와 세월호 유족들이 표 깎일까봐 ‘도라에몽’ 탈을 쓰고 선거운동을 도우며 기적을 만들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달초 정치후원금 모금이 4일만에 목표액을 채웠다던데.
“선거때 모은 후원금이 거의 바닥났는데 탄핵국면에서 얘기를 꺼내기 뭐해 자비로 버티려 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어렵다더라’는 이야기가 돌더니 하루에 4000만원씩 들어와 나흘만에 한도를 넘어버렸다.”
-시민후원이 많았나.
“10만원 미만이 1365명, 10만원이 1039명 해서 2400여명이 소액후원자다. 영수증 발급을 위해 전화한 후원자들이 ‘고맙다’고 많이 하셨다더라. 건강을 챙기라는 말씀도 많았다.”
-탄핵정국 동안 매우 바빴을텐데 몸은 괜찮은가.
“원래 강골인 편인데 탄핵의결이 끝난 9일에는 혓바늘이 돋고 편도선이 부었다. 다음날 촛불집회에 일요일 일정 3개를 소화하니 못견딜 정도여서 짝궁 보러 전교조 사무실로 갔다가 거기 숙직실에서 한참을 잤더니 좀 개운해졌다.” 박주민보다 4살 아래 부인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상근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국회의석 구조상 어렵다는 예상이 많았지만 결국 탄핵가결까지 온데는 시민들의 힘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태블릿PC 보도이후 많은 이들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망가졌구나” 느꼈고 대통령이 변명과 거짓말을 일삼으며 기름을 부었다. 막판에 ‘세월호 7시간’으로 불이 옮겨 붙으면서 타도의 대상이 돼버린 것 같다. JTBC 손석희 앵커가 “(2014년) 4월16일부터 나비의 날개짓은 시작됐다”고 했듯이 누구나 가슴속에 세월호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7시간에 대한 의아함을 가졌을 것인데 거기 불이 붙은 것이다.”
-촛불시위 현장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매우 이성적이고 질서정연하게 진행됐지만 사람들의 가슴 속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법원에서도 계속 집회허용 시간과 장소를 넓혀주면서 폭발력있게 진행됐던 것 같다.”
-박근혜의 7시간이 부각되면서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탄핵이후 야당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7시간만이 아니라 국가정보원 개입설, 침몰원인, 구조실패, 사건 은폐의혹, 언론장악 시도 등에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새로운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준비를 하고 있다.”
-탄핵으로 박근혜 정권이 무력화됐으니 그간 지지부진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는거 아닌가.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는 돼있지만 시중은행들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전격발표한 것을 보면 (무력화된 건지) 알 수 없다. 국정교과서나 사드배치 등은 밀어붙일 것으로 본다. 결국 법을 만들어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새누리당이 어떻게 분화되느냐가 관건이다.”
-탄핵이 박정희 시대의 종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어르신들조차 박 대통령이 아버지를 욕보였고, 상처줬다는 평가가 많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박정희 평가가 달라졌느냐 하면 잘 모르겠다. 다만 40대까지의 젊은층은 ‘친일’에서부터 뿌리를 찾더라. ‘그때부터 이어져온 부패세력의 실체가 드러났다. 한번도 제대로 청산이 안돼 이 꼴이 났다’는 거다. 국정교과서에 친일을 미화한 내용들이 나온 것도 기름을 부었다. 인적청산을 이야기하는 이재명 성남시장 같은 분들이 인기가 많은 이유가 있다.”
-선거법 개정 등 민주주의의 실질화가 필요할 것 같다. 어떤 프로세스가 필요한가. 개헌은 필요한가.
“지금의 국회 의석비율로는 국민들의 인식 지형을 담은 헌법을 못 만든다. 먼저 법률 제·개정으로 민주주의 실질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독일식정당비례대표제 중심으로 선거법을 개정해 의회구성을 국민의 의식지형과 맞춰야 한다. 그런 뒤 개헌안을 만들면 많은 국민들의 의사가 담길 수 있다.” 박주민은 개정된 선거법으로 치러진 2020년 총선을 통해 구성된 국회에서 개헌안을 만드는 스케줄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박근혜 사태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하나.
“민주화 이후에도 국민이 쉽게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비판할 수단이 없다 국민들이 일상생활 하다가도 ‘야 뭐하냐’ 하면 ‘우리 이거해요’, ‘야 너 똑바로 안해?’하면 ‘아 예. 잘하겠습니다’ 이렇게 돼야 한다. 근데 지금은 백만명이 시위에 나서도 ‘나 몰라’하면 끝이다. ‘권력간격지수’라는 개념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매우 높다. 실제로 국내에서 일어났던 비행기 사고인데 기장이 비행기를 잘못 몰고 있는데도 부기장이 제지를 못했다. 내부 고발이 안되고 아랫사람이 충언을 못한다.”
박주민은 대원외고와 서울대 사법학과를 거쳐 2003년 변호사가 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 등에서 주로 시국사건을 많이 맡았다. 그 기간중 남들은 평생 1개도 어렵다는 위헌판결을 4건 받아낸 실력파다. 하지만 정치인 박주민은 아직은 왠지 맞지 않는 기성복을 입은 느낌이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 2주년 집회 당선인사에서 이런 심정이 엿보인다. “어리버리 우물쭈물, 뻘줌, 어색. 그러나 여러분 힘으로 당선됐습니다.”
-원래 어색·뻘줌 스타일인가.
“원래 ‘전 이렇게 훌륭하고 잘났어요’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선거 명함에 ‘대원외고’를 넣으니 짝궁이 ‘그런거 자랑해서 당선되고 싶냐’고 면박을 주더라. 참모들에게 빼자고 하니 스펙 빼면 뭘로 승부할 거냐고 해 결국 타협했다. 내 자신을 이렇게 팔아야 하느냐는 저항감이 컸다. 그래서 엉거주춤, 우물쭈물한 모습으로 비쳐진 거다.”
-그래도 집회에서 가끔 포효하기도 하던데.
“화가 나면 그렇게 된다. 연설하면 화가 나 있다는 게 느껴진다더라.”
-등원한지 반년이 좀 넘었는데 언제가 힘들었나.
“국회에 들어올 때 안고 있던 과제들에 진전이 없어 답답하고 괴롭다. (좋았을 때는?) 백남기 어르신 장례 때 가족들이 고맙다고 했을 때, 전기요금 누진제 법안을 냈는데 비슷한 방향으로 정책결정이 이뤄졌을 때다.”
-법안 발의가 34개나 되는데 법사위 스펙트럼을 넘어 다양하다. 변호사 활동하면서 가졌던 문제의식이 반영된 건가.
“맞다. 예를 들어 공공관리갈등조정법안은 강정 해군기지나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 등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검사장 직선제 법안은 (알다시피)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느껴 발의했다.”
-‘거리의 국회의원’ ‘약자에게 곁을 내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근데 일상적으로 챙겨야 할 행사들도 많던데 이것저것 챙기기 버거울 거 같다.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어르신 문제는 변호사 시절부터 해왔던 일들이다. 지금도 세월호 유족들은 ”박 변호사“라고 부른다. 오히려 현장에 가면 마음이 편하고 힘을 얻는다. 하지만 앞으로 새롭게 뭔가 터지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잘 모르겠다.”
-동료 의원들과 자주 어울리는가.
“처음엔 외톨이였고, 어색했다. 아는 이들도 시민단체 시절 ‘야당 똑바로 하라’며 공격했던 대상들이다. 지금은 서로가 조금씩 곁을 두는 느낌이다. (밥도 먹고 하면서 친해지나) 그런 건 잘 안하고, 농성장 같은데서 자연스레 마주치면서 친해지는 것 같다. 친한 그룹을 만들어 일을 저지르면서 사람을 만나고 해서 좀 더 큰 그룹에서 또 일을 만들고 하며 친해진다. 일로 친해지는 식.”
-정치가로서 최소목표와 최대목표가 있는가.
“민주주의의 실질화를 위한 제도개선 말고는 다른 생각이 없다. 이러면 욕먹겠지만 ‘재선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시민들이 봐주는 내 정치의 장점은 시민사회와의 연계, 현장에 있으려는 자세일텐데 재선한다고 더 나아질까. 지금으로선 자신이 없고 잘 안보인다.”
두번째 인터뷰때도 같은 질문을 던져봤지만 박주민은 “그대로”라고 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이라든지 공공갈등관리기본법이라든지, 검사장 직선제라든지 이런게 돼야 해보자는 마음이 들거 같다. (그런 목표 달성을 위해 일단 전력투구해보겠다는 뜻인가) 맞다.”
박주민은 표창원, 조응천, 이재정 의원과 더불어 요즘 가장 ‘핫한’ 초선의원 4인방이다. 집회장에 가면 사진찍자는 이들이 몰려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다.
-왜 시민들의 주목을 받는다고 생각하나.
“정치인 하면 일도 안하면서 돈과 특권만 챙긴다고 보는 이들이 많은데 내 모습을 보니 좀 성실하다는 느낌을 받은 거 같다. 또 요즘 젊은이들 보기에 굉장히 좋은 스펙인데도 돈 잘버는 길로 안간 거를 신기하고 재밌어 하는 거 같다.”
-정치와 시민간의 거리를 좁힌 역할을 한 것 같다.
“나나 표창원·조응천·이재정 의원들이 재밌고 하는게 독특하고 좀 이상하니까 ‘아 이거 재밌다’는 느낌도 받는 것 같고. 이 분들이 또 SNS에 민감하고 소통도 많이 한다. ‘거지갑’이라길래 ‘은평갑인데요’라고 답도 하니 ‘어 재밌네?’ 이렇게들 느끼시는 것 같다.”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한다.
“저는 갈 방향을 명확히 알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정치인은 아니다. 그냥 정치 시작때 생각했던 것을 이루기 위해 허겁지겁 걷고 있는 상황이다. 나중에 어떤 모습이 돼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는 약속은 드릴 수 있다.”
<신문지면 버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100100&artid=201612162047005
'신문에 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년이길 거부하는 50대의 독백]“점잖은 중년, 강요 마라…우리는 아직 한창때야” (0) | 2017.06.29 |
---|---|
LG 액정표시장치 등 한국 8개 품목, 세계 시장점유율 1위 (0) | 2013.07.01 |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 전략 선언, 아시아 증시 일제급락 (0) | 2013.06.21 |
당신은 ‘하루키’를 얼마나 아시나요? (0) | 2013.05.07 |
잡스의 마지막 8년 (0) | 2011.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