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쓴 글

잡스의 마지막 8년

서의동 2011. 10. 7. 20:28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은 후 기나긴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몸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처럼 창조혼(魂)을 불살라 정보기술(IT) 세계를 도약시켰다. 이 기간 중 잡스가 내놓은 제품들에는 그가 꿈꾸던 새로운 세상과 철학이 담겼고,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잡스가 만년의 대표작이 된 아이폰을 개발하겠다고 사내에 선언한 것은 2004년 중반이다.
 
2003년 10월 처음 췌장암 진단을 받고 식이요법 등을 시도했으나 치료에 실패한 뒤 종양제거 수술을 받던 무렵이다. 한 해 전인 2003년 ‘아이튠즈’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융합’이라는 전례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며 혁신에 가속도를 붙이던 시점이었다. 충격이 컸지만, 그런 만큼 열망은 짙어졌다.
 
“내가 곧 죽는다는 걸 기억하는 것은 큰 결정을 하도록 해주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모든 외적인 기대들, 모든 자존심, 모든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이 모든 건 죽음 앞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성취한 것중) 가장 중요한 것만 남는다.”
 
그의 말대로 모든 외적인 기대와 번민을 훌훌 털어낸 8년은 “기술로 세계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목표를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던 기간이었다.
 
애플사가 2007년 출시한 멀티터치 디스플레이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 아이폰은 그가 품어온 기술에 대한 철학을 구현한 대표작이다.
 
젊은 시절 선(禪)과 불교철학에 심취하며 간결성을 추구했던 그는 버튼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존 휴대전화 대신 간결한 디자인의 터치패널을 아이폰에 도입하며 휴대전화의 개념을 뒤바꿔놨다.
 
그는 “디자인은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외관이 아니라 제품의 성능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독특한 디자인 철학이고, 아이폰은 그런 디자인에 대한 그의 개념이 담겼다. 사람들은 아이폰을 계기로 IT제품과 심미안의 관계를 이해하게 됐고, 선과 디지털이 결합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전세계적으로 ‘아이폰 폐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의 만년은 혁신과 투병은 동시에 따라 다닌 시기였다.
 
수술 후 잠잠하던 그의 건강이상설은 2008년 6월 당시 ‘아이폰3G’ 발표장에 등장한 잡스의 여위고 노쇠한 모습으로 다시 불거졌다.
 
2009년 1월에는 간이식 수술을 받느라 6개월 가량을 쉬었지만 이듬해인 2010년 다기능 휴대 단말기인 ‘아이패드’를 내놓아 IT업계의 판도를 또 한차례 바꿔놨다.
 
잡스는 올해 1월 건강 악화로 두번째 병가를 내 IT업계를 다시 충격에 빠뜨렸다. 이때 세간에는 ‘6주 시한부 생명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잡스는 지난 3월 초 애플의 아이패드2 제품 설명회와 6월 개발자회의 등에 모습을 나타내 건강악화 우려를 불식시켰다.
 
잡스는 지난 8월24일 애플의 CEO 자리를 쿡에게 넘겼고, 10월5일 세상을 떠났다. 
 
공업의 시대를 연 토머스 에디슨, 대량생산 시대를 연 헨리 포드에 이어 산업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잡스는 한평생 성공과 좌절이 교차하는 치열한 인생을 살았고, 그 치열함 만큼 인류는 더 행복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