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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 70년의 대화

서의동 2018. 2. 4. 22:13


김연철 교수의 <새로읽는 남북관계사 - 70년의 대화>(창비)를 읽었다. 전쟁이후 1954년 제네바 회담부터 박근혜 정부까지의 남북관계의 주요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프롤로그의 한 대목이 와 닿는다. 

 "두개의 코리아는 더 많이 접촉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차이를 인정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거울앞에서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도 웃고, 내가 주먹을 들면 상대도 주먹을 든다. 그러나 주체와 객체는 분명하다. 거울 속 상대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울 속 상대를 움직인다. (중략)"

거울의 비유는 남북관계를 가리킨다. 북한의 변화를 원하고 남북관계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책을 보며 새로 알게 된 내용을 정리했다. 


1. 1954년 제네바 회담은 휴전협정 이후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논의한 처음이자 마지막 다자회담.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 참가한 첫번째 국제회의. 중국은 이 회담에서 인도차이나 문제의 중재에 큰 역할을 하면서 국제외교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 


2.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두달전에 합의됐지만 박정희 정권은 합의내용을 공개하길 꺼려해서 곧바로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4단계 군축안을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평화공세로 나가자 뒤늦게 발표. 


3. 76년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을 계기로 판문점에 38선이 그어짐. 높이 7센티미터, 너비 40센티미터의 콘크리트 선으로, 이번에 남북회담 할 때 이 콘크리트 선을 넘는 장면이 여러번 등장. 


4. 북한은 1950년대 이후 전력송전, 수재민 원조 등의 제안을 꾸준히 해옴. 이를 한국정부는 번번이 거부해오다가 1984년 수해 때 전두환 정권이 덜컥 제안을 수용해버림. 전두환은 88올림픽을 앞두고 긴장완화가 필요했기 때문. 


5.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7.7선언은 사전에 미국과 협의하지 않았고 발표 이틀전 외교채널을 통해 선언의 사본을 전달. 하지만 동아시아 전략변화를 추진하던 미국은 이를 환영.


6. 남북기본합의서는 북한이 수세적으로 응했던 사례이고, 이 과정에서 몇가지 양보를 얻어냄. 가장 큰 것은 해상경계선에 관한 것으로 남북합의서에서는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리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 이로써 남측이 관리해온 NLL을 북한이 인정하게 된 셈. 


7.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정부내 강온대립으로 방침과 제도가 충돌하는 사례가 많았음. 7.7 선언을 했음에도 남북학생회담을 수용하지 않았고, 정주영의 방북은 허용했지만 문익환, 황석영 등은 처벌. 민간교류의 시대를 열자고 했지만 관련법은 민간교류를 처벌. 


8.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현충일 연휴 놀러가는 사람들 보고 화를 내자 청와대가 방송사에 북핵보도를 늘려달라고 부탁. 6월8일부터 전쟁보도가 급증. 


9. 1994년 3월 남북특사 교환 실무접촉에서 불거진 '서울 불바다 발언'은 통일원(당시 통일부) 관계자가 불바다 발언을 돋보이게 편집한 2분40초짜리 테이프를 방송사에 전달해 공개됨. 이 발언의 파장으로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과 북한의 IAEA 핵사찰 수용을 동시에 한다는 북미간 합의가 공중분해됨. 여론이 들끓자 김영삼은 팀스피리트 재개를 선언하고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를 선언. 북핵문제가 교착되고 한반도 전쟁위기로 이어짐 


10. 1996년 강릉 잠수함 사건이 터진 뒤 6일만에 북한은 우발적 사고로 규정했으나 김영삼 정부는 이를 계기로 대북지원을 중단하고 기업인 방북을 금지했으며 남포공단의 대우직원 철수시킴. 


11.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실시된 대북 쌀지원은 차관형식으로 전달. 10년 거치 20년 분할상환으로 이자율은 연 1퍼센트. 


12.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는 북한에 대한 제재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과 동시에 '한반도의 안정' '평화적 해결' '6자회담 재개' '9.19 공동성명의 지지'를 언제나 포함. 중국이 '결의안의 완전하고 철저한 이행'을 강조하는 것은 제재를 제대로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제재하는 만큼 평화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