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실용주의적 진보'론

서의동 2010. 1. 4. 21:25
 지난해 하반기 이후 야당과 진보진영의 성적은 낙제점이었다. 이슈를 선점하지도,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지난해 여름 미디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정권이 친서민을 부르짖으며 뒤통수를 치자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었을 뿐이다. 보수가 날아다니는 동안 야당과 진보는 바닥을 기었다.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등 정권의 폭주에 맞서기도 벅찼던 점은 인정한다. 거리에선 경찰력으로, 국회에선 숫자로 밀어붙여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슈 선점은 언감생심이었다”고 말하면 변명은 되겠지만, 여론은 외면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첫해에 저지른 정책 실패에 대한 기억을 서서히 지우고, 야당과 진보의 주장을 흘려듣기 시작했다.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런 흐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여론은 문제 많은 4대강 사업이 부각될 때나 반짝 귀를 기울일 뿐, 이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 소식에 시선을 빼앗긴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절반에 못 미치는 걸 보면 아직도 이명박 정부는 민심을 얻지 못했다.
 국민 중 상당수가 정부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야당과 진보진영에 눈길을 주지 않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권 쪽으로 돌아선 언론들이 많아서? 모든 언론에 재갈이 물려있던 1980년대 국민들이 재야에 보낸 관심과 지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아니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야당과 진보가 알맹이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대안은 있지만, 있는 것으로 보이지 못한 탓”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론 차이가 없다.
 진보진영의 문제점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산발적인 문제 제기는 타당하지만 대안에 구체성이 없어 미덥지 못하다.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에 매몰돼 역동적인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따라잡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먹고 살아갈지를 주체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소규모 개방경제이고,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을 진보는 외면한다. 
 특히 경제부문에서 진보의 프레임은 녹슬었고,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차이점을 파고들지 않는다. 유럽의 좌파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지만 세계화에는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덴마크의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올린 고용 해법인 ‘유연안전성’은 세계 경제질서의 변화를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다. 
 이제 야당과 진보도 성장과 경쟁력을 고민해야 한다. 부(富)와 경쟁을 적대시하는 태도로는 국민의 관심을 살 수 없다. 진보적인 가치와 경제성장이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요컨대 ‘진보적 실용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만, 70년대 개발경제의 도식에 갇혀 성장률에만 집착하는 현 정부와는 180도 다른 차원에서 성장론을 고민해야 한다. 보수가 입을 딱 벌릴 정도의 구체성과 미래예측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얼마의 예산을 투입하면 어느 정도의 효과가 발생하는지 정밀하게 계측한 결과를 토대로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
 대기업과 부유층이 성장하면 그 과실이 사회 전 계층에 돌아간다는 낡은 ‘개발경제’ 논리가 아직도 횡행하는 데는 진보진영의 책임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