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잡기 시작한지 2년만에 읽었다. 서재에 꽂힌 책을 볼 때마다 두고 두고 부담이 됐는데, 어쨌
건 끝냈더니 속이 후련하다. <녹색세계사>의 지은이인 클라이브 폰팅의 이 저작은 연대기순이 아니라 각기 정해둔 테마에 맞춰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개돼 있다.
제국, 전쟁, 사회 등등의 분류대로 책을 읽어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단조로운 느낌이 든다. 가급적 사관을 배제하고, 객관을 지향하는 서술(역사서에서 객관적이란 말이 허무하긴 하겠지만)방식이라 어쩔 수 없을 수 있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지만 알지 못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체계적으로 섭취할 수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유전은 서방자본에 의해 장악됐지만 멕시코의 경우는 1938년부터 국유화된다. "1938년 3월18일 정부는 산업의 완전한 몰수와 국유기업 페멕스(멕시코석유회사) 설립을 선언했다. 이 조치에 외국 기업과 그 정부들은 분노했지만 멕시코인들 사이에서도 거대한 애국적 대응이 일어났다. 새로운 회사는 석유산업을 운영할 능력을 곧바로 입증했고, 외국정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469쪽)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중간계급 집단이 좀더 포용적인 민주적 시스템을 수용하기 보다는 노동자계급과 농민을 배제한 채 엘리트층과 동맹하여 독재를 지지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482쪽)
20세기 대표적 야만의 사례인 홀로코스트에 대해 저자는 단순한 집단학살과는 다른 29세기의 특정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홀로코스트의 기원으 유럽의 반유대주의 역사에 깊이 뿌리박힌 것이지만 인종주의와 우생학에 관한 19세기적 개념에 의해 증폭되었다. 그것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가스실과 대량화장을 가능하게 한 기술의 발전, 산업적 진보가 있어야 했다. 관료제의 성장이라는, 또 다른 특별히 20세기적인 현상도 그것의 실행에 중요했다. 또한 살해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을 확인하고,처리하며, 살해센터로 보낼 '합리적'이고 규율잡힌 조직도 있어야 했다. (640쪽)
객관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저자는 진보와 야만이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20세기 개개의 사건들이 어느쪽으로 기울어졌는지를 드러내려 애쓰고 있다. 20세기는 서구인의 관점에선 과학과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진보에 대한 갈망이 컸지만 두차례의 세계대전으로 환상은 깨졌다. 나머지 나라에서는 착취와 고통, 전통과의 단절이 있었고, 지구 전체적으로 대량학살과 환경파괴 등 야만이 자행되던 야누스적 시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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