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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거침없고 날카로운 국외자의 시선

서의동 2009. 8. 9. 16:46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우리의 자손들이 장차 유치원 시기부터 서로를 경쟁자로만 인식해 ‘무한 경쟁’에 몰입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를 배려해주고 도와주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 것인지는 지금 우리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오른쪽으로 치우쳐도 너무 치우친 우리 상황에서는, 비시장적 사회와 같은 궁극적 이상은 고사하고 일반 대중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만한 복지 자본주의만이라도 성취하려면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배계층에게는 왼쪽으로부터의,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계속 넣어야 한다"(22~23쪽)

 박노자의 시선은 늘 날카롭다. 우리가 ‘이 정도는 대충 넘어가도 되겠지’라고 생
각하는 지점을 매섭고 아프게 찝어낸다. 그의 지향점은 사회민주주의다. 볼셰비즘 혁명을 한때 꿈꾸던 386들이 코웃음칠지는 몰라도 갈수록 보수수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 정도라도 해내려면 무수한 피가 필요하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까불지 말고, 이 정도라도 해보라는 것이다. 한번 해보기만 하고 안될 거 같으면 포기하고 ‘개혁적 자유주의’정도에 머무른다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그들(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 말하는 ‘개혁’이란 뭔지 늘 궁금했었는데, ‘햇볕 정책’ 이외에는 대체로 각종 악법(국가보안법 등)을 폐지하는 것, 관료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시키는 것(각종 토착 비리 척결), 그동안 이런저런 월권행사를 당연시해온 각종 대자본(특히 삼성?조중동)에 대해 국가가 적당힌 견제를 가하는 것,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거품 터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단계적 땅값 내림세 유도, 투기 방지책) 정도라 하겠다. 뭐, 발상이야 좋고, 나도 하등의 반대가 없다. 그러나 이 자유주의적 ‘개혁론’의 기본적 문제점이란, ‘자유주의’라는 틀에 갇혀 있는 이상, 앞에서 나열한 아주 ‘온건한’ 목표들도 사실상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슬픈 현실에 있다. ‘온건한 자유주의적 노선’마저도 사실상 ‘자유주의’보다 더 진화된 (사회주의적?사민주의적) 세력들만이 제대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게 ‘한국적 정치’의 재미있는 역설이다.(53쪽)

 그런 점에서 그는 노무현 시대를 아프게 비판한다. 그는 훌륭한 정치인이지만 그의 시대를 '지나간 영광의 시대'쯤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 노무현 시대의 한계를 철저히 반성하는 것이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시선을 돌리라고 강요한다. 
 
 박노자는 우리사회의 소수자에게 항상 관심을 돌린다. 이땅에 기득권이 없고, 외국인 귀화자라는 자유로움 때문인지 성역처럼 돼 있는 '종교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뱉고 싶지만 차마 뱉을 수 없는 말들을 그에게서 들을 수 있는 것도 이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