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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 드림> 유럽의 소리없는, 그러나 반가운 혁명

서의동 2009. 9. 8. 17:06
 한·미 FTA에 이어 한국과 유럽연합(EU)간의 FTA를 지켜보면서 유럽연합은 내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연합이 내놓은 협상안 중엔 동물복지라는 게 있었는데, 예를들면 양계장을 지을때 닭의 마리당 공간을 넓히고, 도축 48시간 전에는 동물을 학대하지 말 것이 포함돼 있었다. 무역분쟁이 발생할 경우 무역보복 대신 정부와 시민대표로 구성된 포럼에서 해결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자유무역하자는 협상에서 동물복지나 시민대표라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들이 왜 나오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뼛속까지 미국을 닮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국사회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엇비슷한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유럽은 어떤 나라이고, 나는 얼마나 유럽을 알고 있는가 궁금증이 들었지만 얼마 안가 묻혀버렸다. 유럽을 몰라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애독한 책 중 하나가 <유러피언 드림>이란 이야기를 듣고 궁금증이 다시 도져 집에 있던 책을 잡았다. 5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이지만 사흘만에 읽힐 정도로 흡인력이 강했고 그만큼 충격도 컸다. 근래에 읽은 최고의 책이 아닐까 싶다. 대목마다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거나 무릎을 치게 만도록 만들었다. 

 이 책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개인의 자율성과 부의 축적이 핵심인 계몽주의 시대의 ‘아메리칸 드림’이 미래사회를 구현하는 데 더이상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지속가능한 개발과, 삶의 질, 상호의존성, 인권에 초점을 맞추는 ‘유러피언 드림’에 주목해야 한다고 리프킨은 강조한다. 민족국가가 시대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신자유주의 사조가 세계 불균형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현실을 미국식 가치관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총체적인 삶과 사회의 구조와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고, 때마침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리프킨이 찝어낸 것이다. 

  리프킨의 책은 <노동의 종말> <육식의 종말>이후 세번째다. 그는 기자로 따지면 기획기사를 잘 쓰는 기자라고나 할까. 미국인으로 유럽을 20여년간 다니며 미국과 뭔가 다른 유럽인들의 생활방식- 예를 들면 뒷짐지고 어슬렁 거리거나 카페에서 몇시간씩 머무는 사람들-에 주목한 그는 이 차이가 실은 총체적인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란 점을 각 분야에서 논증해간다. 
 
 유러피언 드림은 곧 구현될 유토피아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한때 총을 들고 싸우던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의 지도자들은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며 형성된 반성의 공감대에서 지난 50여년간 벽돌한장씩 쌓듯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일구어 왔다. 어느덧 이 꿈은 허물지 못할 정도로 단단해졌다. 유럽은 20세기 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계몽주의가 갖는 한계를 인식해왔다. 비좁은 땅덩어리에 살면서 타인들과의 관계를 항상 의식하고 배려해야 하는 삶의 방식이 결국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자아를 찾는 사회를 만들었고, 그만큼 이웃과 사회에 대한 ‘공감’과 공존의식이 커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좌파들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여러 테제들이 EU의 집행위원회에서 채택되고 법제화되는 혁명적인 실험이 지구 한켠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단편적인 뉴스, 미국편향의 국내언론을 통해서는 잘 그림이 그려지지 않던 유럽연합의 '맛'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금융위기이후 우리의 국가전략을 설정하는 논의에도 유용한 참고가 될 것 같다. 소비로 버텨온 미국에서 향후 적어도 수년간은 경제가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지만, 비슷한 경제규모의 유럽연합은 상대적으로 금융위기의 피해를 덜 봤기 때문이다. 온 신경을 미국에만 맞춰온 우리의 총체적 삶의 방식에 혁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금융위기는 일깨우고 있다. 
 유럽에 대한 이해들이 전무하다시피하고, "아메리칸 스탠다드'에 젖어있는 우리 정부의 정책당국자들이 이 책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