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고노(河野) 부자의 엇갈린 행보

서의동 2019. 8. 4. 22:29

2018.11.07 

일본 정치의 ‘55년 체제’는 자유민주당이 1955년에 창당된 것을 기점으로 형성된 양대 정당 체제를 가리킨다. 자민당이 여당, 좌파 사회당이 제1야당을 유지하는 체제가 38년간 이어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토록 장기집권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로 전문가들은 자민당 내 다양한 파벌이 경쟁하면서 내각을 교체해온 것이 정권교체와 맞먹는 효과를 냈기 때문으로 본다. 자민당이라는 ‘빅텐트’는 유지하되 중도 혹은 리버럴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선 것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다는 분석이다.

 

거물 정치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81)가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중도 색채가 강하고 계파색이 엷어 여러 내각에서 중용됐고, 사상 최장수 중의원 의장을 지냈다. 북한에 쌀 50만t을 지원하고, 중국과도 우호적 관계 유지에 노력하는 등 ‘동아시아 선린정책’을 취했다. 1993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있음을 분명히 한 ‘고노 담화’를 발표하는 등 일본의 과거사 청산에 전향적이었다. 2015년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겨냥해 “보수정치라기보다 우익정치 느낌이 들 정도”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의 장남 고노 다로(河野太郞) 의원이 지난해 8월 외무상이 되자 아베 정권의 대외행보가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일었다. 자민당 내 대표적 탈원전 지지자이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소신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무상이 되자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이행을 압박하고 종전선언 추진을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등 기대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오죽하면 부친 고노 요헤이가 “남북이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일본이 방해해선 안된다”며 아들의 발언을 공개 비판했을까.

 

최근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발언도 거칠다. “국제법에 기초해 한국 정부와 맺은 협정을 한국 대법원이 뒤집을 수 있다면 어떤 나라도 한국 정부와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난 5일 발언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 보수세력의 지지를 모으려는 포석인지 모를 일이다. 본심이 어디에 있건 고노의 행각은 중도가 갈수록 빈약해지는 일본 정치의 협량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