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8
1998년 11월20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했다. 클린턴은 이날 저녁 남쪽 관광객을 실은 두번째 금강산 유람선이 동해항을 떠나는 장면을 호텔 TV로 지켜봤다. 그는 다음날 정상회담에서 “매우 신기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밝혔다.
클린턴의 발언은 천금의 무게를 지녔다. 한국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투자유치가 절실했지만 국제사회는 한반도 정세악화로 투자를 꺼렸다. 불과 3개월 전인 1998년 8월 초 북한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이 불거졌고, 8월31일에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한껏 높아져 있었다. 전 세계로 타전된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금강산관광의 산파는 단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1989년 처음 방북해 북한과 ‘금강산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했다. 1998년 6월15일에는 북한에 제공할 소 500마리를 트럭에 싣고 방북했다. 20세기 마지막 냉전지역인 한반도에서 소떼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기상천외한 ‘평화 퍼포먼스’에 세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정 명예회장은 그해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금강산관광 사업 합의서’를 체결했고, 11월18일 첫 관광선 ‘금강호’가 동해항을 출항했다.
이후 2008년까지 195만5951명의 남측 관광객이 금강산을 다녀갔고, 이산상봉행사 등 다양한 남북교류 행사가 열리면서 금강산은 평화의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면서 관광이 중단됐다. 금강산관광 사업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지만 그중 절반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남북관계가 올 들어 복원됐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때문에 사업 재개는 여전히 기약하기 어렵다. 평양 공동선언에서도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사업을 정상화하겠다는 데 그쳤다.
‘소떼 방북’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해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는 달성하기 어렵다. 18~19일 금강산에서 열린 20주년 행사가 ‘소떼방북’의 정신을 되살리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여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스타 CEO의 몰락 (0) | 2019.08.04 |
---|---|
[여적]향린교회 (0) | 2019.08.04 |
[여적]고노(河野) 부자의 엇갈린 행보 (0) | 2019.08.04 |
[여적]보수·진보가 함께하는 통일 대화 (0) | 2019.08.04 |
[여적]쓰나미 피해지의 올레길 (0) | 2019.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