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향린교회

서의동 2019. 8. 4. 22:31

2018.11.19  

서울 향린(香隣)교회. ‘향기나는 이웃’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개혁교회다. 서울대 기독학생회에서 활동하던 민중신학자 안병무(1922~1996) 등 청년 12명으로 꾸려진 종교공동체가 1953년 5월 남산 기슭의 고아원(향린원) 터에 교회를 세운 것이 시작이다. 처음에는 특정 교파에 속하지 않는 평신도 독립교회로 출발했다가 1959년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했다. 남산에서 남대문시장이 있는 남창동으로 옮겼다가 1967년 을지로에 있는 지금 자리로 이전했다.

 

향린교회는 대형화를 거부한다. 1974년 일반교회 형태로 전환한 뒤 신자수가 불어나면서 폐해가 나타나자 새로운 교회상을 모색하면서 세운 첫번째 원칙이 ‘대교회주의 배격’이다. “여러가지 구색을 갖추어 놓은 백화점 같은 교회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홍창의 원로장로 ‘향린교회의 역사와 선교’) 신자수가 500명이 넘으면 분가토록 하는 원칙을 만들어 1993년 서울 송파에 강남향린교회를 세웠고, 이후 들꽃향린교회와 섬돌향린교회가 추가 분가했다.

 

향린교회는 활발한 사회참여,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를 실천해 왔다. 민중의 억눌린 삶을 대변하고 증언하는 ‘갈릴리 예수’의 삶을 따르려는 것이다. 평신도가 주도하는 목회운영위원회 조직과 담임목사 임기제 등 민주적인 운영방식과 투명한 재정공개로도 유명하다. 예배 시작과 끝에 탁상종 대신 징을 울리고, 국악찬송을 부르는 등 전통문화의 수용도 다른 교회에서 찾기 어렵다.

 

지상 3층의 교회 건물은 붉은 벽돌과 화강석을 두른 평범한 외관에 십자가조차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1987년 ‘6월항쟁’을 주도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가 꾸려졌고, 숱한 시국집회와 회의가 열렸다. 걸어서 2분 거리인 명동성당과 함께 교회 자체가 ‘민주화 유산’이다.

 

향린교회가 도심 재개발 붐에 밀려 내년에 헐리게 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현 건물을 매각하고 서울 사대문 안 다른 곳에 새 건물을 지어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피치 못할 저간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역사가 깃든 건물이 사라지는 건 착잡한 일이다. 서울은 갈수록 기억할 곳을 찾기 어려운 ‘몰역사’의 공간이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