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안후이성 샤오강촌

서의동 2019. 8. 4. 22:35

2018.12.17  

올해 40주년을 맞는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농촌은 인민공사(人民公社)로 불리는 집단농장 체제였다. 영농은 생산대 단위로 이뤄졌고, 농민들은 생산대에 소속된 사원이었다. 당 간부들의 관료주의, 생산대원들의 ‘평균주의’가 만연하면서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농민들은 빈둥거리며 의욕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농촌개혁의 발원지인 안후이(安徽)성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작업 시작을 알리는 생산대 대장의 첫번째 호루라기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두번째 호루라기에는 머리를 들어 쳐다본다. 세번째 호루라기에는 천천히 움직인다. 밭에 도착해서는 호미를 두고 왔다고 둘러대고 다시 집에 다녀온다.’

 

1977년 안후이성 당서기로 부임한 완리(萬里)가 농가를 찾았다. 노인과 나이가 찬 딸 두 명이 있었지만 당서기가 방문했는데도 앉아만 있었다. 알고 보니 모두 바지가 없어 함께 얇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있느라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엔 젊은 부부가 두 아이를 키운다는 농가를 방문했다. 아이들이 안 보여 어디 갔느냐고 묻자 마지못해 큰 솥의 뚜껑을 열어 보였다. 솥 안에는 벌거벗은 여자아이 두 명이 수줍게 웃으며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추위를 피하도록 밥을 짓고 난 뒤 온기가 남은 솥에 앉혀둔 것이다. 완리는 두 집을 나온 뒤 눈물로 탄식했다(조영남 <개혁과 개방-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참혹한 농촌현실을 목도한 완리는 ‘생산대의 자주권을 보장하고, 일한 만큼 분배토록 하는’ 내용의 농촌개혁에 착수했다. 펑양현 샤오강(小岡)촌은 한발 더 나아가 호별영농제를 비밀리에 결의한다. 자본주의자로 몰릴 위험천만한 결정이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안후이성의 간부들은 묵인했다. 호별영농의 효과는 즉시 나타나 이듬해 샤오강촌의 식량 생산량은 전년 대비 5배에 달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도 2012년 ‘포전담당제’를 도입했다. 협동농장의 말단 단위인 분조의 인원 수를 3~5명으로 줄이고, 초과 생산물은 자율 처분하도록 했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이런 조치의 효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구축된 뒤 개혁·개방에 성공한 중국의 길을 북한도 본격적으로 밟아가기를 기대한다.

'여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센카쿠와 한·일 레이더 갈등  (0) 2019.08.04
[여적]명태의 귀환  (0) 2019.08.04
[여적]박항서의 민간외교  (0) 2019.08.04
[여적]유전자 편집 아기  (0) 2019.08.04
[여적]화성탐사선 착륙 성공  (0) 2019.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