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9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발표한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모든 인간들은 시험관에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다. 수정되기 전부터 등급이 정해지고 그에 걸맞게 지능과 신체능력이 조작된다. 인간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으로 분류된다. 최상위 알파 등급은 최고의 지성을 갖추도록 길러지지만, 최하위인 엡실론은 지성이 제거된다. 하수처리 같은 험한 노동을 불만 없이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가 출간된 1930년대는 우생학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대다. 인간은 개량될 수 있으며, 열등한 인간은 씨를 말려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빚은 극단의 결과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다.
1997년에 제작된 앤드루 니콜 감독의 SF영화 <가타카>도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인간들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다. 아이가 태어나면 유전자 분석을 통해 예상 수명과 미래의 질병 등을 판정하고 ‘적격자’ ‘부적격자’로 분류한다. 자연 출생자인 주인공은 태어나자마자 우울증에 걸릴 확률 42%, 집중력장애에 걸릴 확률 89%, 예상수명 30.2년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유전자 조작으로 우성인자만 지니고 태어난 ‘적격자’들은 우주비행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지만, ‘부적격자’인 자연 출생자들은 청소부 같은 단순노동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중국에서 유전자 일부를 편집해 탄생시킨 ‘유전자 편집 아기’가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중국 선전남방과학기술대학의 허젠쿠이 교수는 지난 25일 불임 부부들로부터 얻은 배아를 상대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자를 편집했고, 이를 통해 쌍둥이 여자아기 2명을 출산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초로 유전자가 편집된 맞춤아기가 등장한 것이다. 과학계는 생명윤리를 저버린 이번 사태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문형 아기’가 머지않은 장래에 본격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각국이 이미 연구목적에 한해 인간배아에 대한 유전자 편집을 허용하고 있는 데다 게놈산업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어서다. 유전자가 보강된 슈퍼인간과 그렇지 못한 자연인간으로 사회계층이 양극화하는 <가타카>의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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