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빛바랜 아베의 최장수 총리(2020.8.25)

서의동 2020. 9. 15. 16:01

아베 신조(가운데 오른쪽) 일본 총리가 24일 마스크를 착용한 채 도쿄 소재 게이오대학 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7일 같은 병원에 7시간 반 동안 머물며 건강검진을 받은 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았다./AP 연합뉴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07년 9월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자 1년 만에 물러났다. 후임인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등 자민당 총리들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총선 패배로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집권 3년3개월간 3명의 총리가 등장했다. 6명의 ‘단명 총리’를 거치면서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주요 7개국(G7) 회의 같은 국제 행사장에서 일본 총리들은 외톨이 신세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무려 5명의 일본 총리에게 “미·일 동맹은 굳건하다”고 다짐해야 했다. 미 국무부 관리들이 새 일본 총리의 이름을 헷갈려하는 장면에 일본인들은 혀를 찼다.

민주당 정권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은 끝에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9개월 만에 퇴임하면서, 외교 주도권을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등 극우 포퓰리스트들에게 빼앗겼다. 동아시아 중시 외교를 부르짖던 민주당 정권하에서 중국·한국과의 관계는 오히려 악화됐다. 단명 총리에 진저리가 난 일본 사회에서 ‘웬만하면 총리를 끌어내리지 말자’는 안정희구 심리가 커졌다. 아베의 재집권은 이런 흐름에서 나왔다. ‘재수(再修) 총리’ 아베의 장기집권은 처음부터 예고됐던 셈이다.

24일로 아베 총리의 재임기간이 2799일을 기록, 전후 최장기 연속집권을 달성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장기 집권 요인으로 야당의 지리멸렬과 함께 관료인사권 장악을 꼽는다. 총리실 산하에 내각인사국을 두고 관료사회에 맡겨온 부처의 인사권을 국장급까지 거머쥐면서, 관료들이 알아서 기는 ‘손타쿠’ 관행이 생겨났다. 모리토모·가케 학원 사태 등 예전 같으면 총리 사퇴감인 대형 스캔들을 관료들이 몸을 던져 덮었다. 관료 장악은 결국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도쿄 올림픽 개최에 집착하는 총리의 심기를 읽은 관료들이 코로나19 사태 초기 방역관리보다 확진자 수 억제에 신경쓰다 방역에 실패해 민심을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만든 것이다.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아베의 최장수 총리 기록보다 그가 언제 퇴임할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총리단명 사태가 빚어낸 ‘장수 총리’의 시대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