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지붕뚫고 하이킥 완전 공감

서의동 2009. 10. 18. 16:25
 요즘 내가 버닝하고 있는 ‘지붕뚫고 하이킥’. 오버하는 이순재와 김자옥이 별로고, 이순재 손녀인 해리는 왕짜증이지만 나머지 캐릭터들은 신선하다. 어떤 글에서는 청년실업과 도시빈민 문제, 핵가족 시대 가정교육, 노년들의 (이)성생활 등 사회현안들을 소재로 한 참신한 시도라는 극찬을 했던데...내 생각도 과히 틀리지 않다. 심각하게 고민안하고 가볍게 보면서도 세경이나 신애를 보면 짠한 생각이 든다. 외국인 젊은이를 출연시킨 것도 이주노동자 100만명 시대라는 흐름과 부합한다. 어떤 대중문화전문기자가 쓴 글을 옮겨놓는다. 
 

 미니시리즈든, 주말드라마든 자신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1~4인 정도의 주인공들만 주도적인 역할을 할 뿐, 나머지 인물은 보조적이고 제한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하지만 벌써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는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은 모두가 주인공이 될 준비를 해둬야 한다. 초반에는 상처한 노인 이순재의 멜로의 욕망과 ‘서운대’ 출신이지만 ‘서울대’로 오인을 받아 졸지에 학력을 속이고 과외 선생이 된 황정음의 톡톡 튀는 모습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순재의 사위인 정보석과 딸 이현경(오현경 분), 아들 이지훈(최다니엘 분)의 이야기도 제법 디테일하게 전개된다. 심지어 일반드라마라면 단역인, 김자옥 집에 세들어 사는 가수 지망생 광수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캐릭터가 중요하다. 캐릭터가 잡히지 않으면 인물의 스토리를 펼쳐도 시청자의 눈길을 잡지 못하고 산만하게만 느껴진다. 캐릭터가 때로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과장되고 극단적인 모습을 띠는 건 그래서다.

 이순재가 70대의 나이에도 과격한 멜로를 보이며 질투의 화신으로 변하기도 하고, 해리(진지희 분)는 도저히 봐주기 힘든 버릇 없는 아이로 그려진다. 하지만 캐릭터를 과장되게만 그리는 게 아니다. 이야기를 풀기 위한 준비작업이자 인물의 히스토리다. ‘캐릭터’가 꾸려지면 캐릭터간의 ‘관계’가 보이고, ‘캐릭터’와 ‘관계’는 스토리에서 더욱구체화되는데, 현실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어 어느 순간 공감하고 감동받게 된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해리에 대해 짜증 나는 아이라는 불만의 글들이 계속 올라온다. 이에 대해 김병욱 PD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판단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해리처럼 이기적으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서울대가 아닌 서운대 출신임이 들통나게 된 황정음이 온몸으로 이를 막는 모습을 보고 산골 소녀 신애(서신애 분)가 “언니 왜 그래요? 서운대 다니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서울대 다니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서 그래요?”라고 묻는 모습을 코미디로만 볼 수는 없다. 학력지상주의의 병폐를 꼬집는 위트가 스며 있다.
버릇없는 부잣집 아이 해리의 인형을 훔쳤다가 수사(?)가 시작되자 제자리에 돌려놓는 신애에게 지훈이 새 인형을 선물하며 “이 이야기는 우리만의 비밀”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볼 때 짠한 느낌이 드는 것도 단순한 에피소드를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딸 해리의 IQ검사가 겨우 세 자리 숫자로 나왔는데도 정보석이 크게 기뻐하는 것도 유난히 숫자에 약한 과거사의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세경(신세경 분)이 동생인 신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며칠을 굶어 ‘많이 먹기대회’에 나가는 것도 코미디이지만 페이소스가 충분하다.
김자옥은 물건이 없어지면 하숙생인 광수부터 의심한다. 발냄새가 나도 다른 하숙생이 아닌 광수를 항상 먼저 지목했다. 결국 광수가 범인이 아님이 증명됐고 평온을 되찾았지만 사람에 대한 편견은 2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캐릭터가 구축되면 그 캐릭터에 대한 스토리를 풀어가는데, 그 스토리는 단순히 웃음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개연성과 페이소스를 담고 있다. 웃는 순간 먹먹해지기도 하고, 짠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결국 ‘지붕 뚫고 하이킥’은 도시화와 현대화에 밀려 사라져가는 인간(가족 간)의 소통과 사랑의 원형과 같은 잃었던 가치 등을 되새기게 해준다. 캐릭터는 살아 있고 에피소드는 충분히 재미있으면서도 이런 가치들을 슬쩍슬쩍 건드린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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