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넌 일본인 아내들은 3년 후에는 북한과 일본이 서로 왕래할 수 있게 되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곳에 온 일본인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어요"라고 어느 일본인 여성은 말한다. 북한으로 가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에게 "3년 후에 돌아올게"하며 이해를 시켰다는 여성도 있다. (42쪽)
일본인 사진작가 하야시 노리코의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정수윤 옮김, 정은문고)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이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이뤄진 재일동포의 북송사업에서 재일동포 배우자(주로 남편)를 따라간 일본인 배우자는 1830명 가량이다. 그런데 북으로 갈 당시에 영영 되돌아가지 못하리라고 여긴 이는 없었다. '길어야 3년 정도 지나면 북한과 일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리라. 북한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고 나서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중 43명의 고향방문단을 빼고는 일본 땅을 밟을 수 없었다.(간혹 일본의 가족, 친척들이 북에 와서 상봉한 사례는 있다)
왜 그들은 '3년 후'에 돌아오다고 했을까. 이 숫자가 그냥 나왔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조선총련 쪽에서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당시 북일 당국간에 적어도 민간교류는 보장하는 방침을 갖고 있었던 것인가? 그런 분위기가 총련을 통해 북송자들에게 전해진 것일까. 당시 상황이 궁금해진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북한은 1954년부터 북일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었다. 1955년 북한의 남일 외무상(정전협정 체결 을 위해 북한군 대표로 판문점에 나타났던 그 남일이다)은 대일관계에 관한 성명을 발표해 일본에 공식적인 국교정상화 제안을 했다. 북일간 접근은 속도를 내면서 일본 국회의원 대표단이 1955년 10월 방북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국교정상화와 제 현안 타결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 코뮤니케'를 채택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북한에 잔류해 있는 일본인들의 귀국과 재일조선인의 귀국문제를 둘러싼 공식 교섭이 시작됐다. 무역부문에서는 일본에 일조무역회사가 설립됐고, 북일간에 민간무역협정(1957)이 체결되기도 했다.
즉 북송사업은 195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북일 교류 무드' 속에서 추진됐던 것이다. 그런 만큼 '귀국사업'으로 가족을 따라 북으로 간 일본인 배우자들이 3년쯤 지나면 일본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었을 법 하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동북아 정세는 미일안보조약 체결, 한일 국교정상화, 중소분쟁 등으로 경직되기 시작했고, 이 영향으로 북일관계도 후퇴했다. 게다가 재일조선인들의 북한 체제 부적응 등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귀국사업'은 당초 예상과는 다른 형태로 변질돼 갔다고 할 수 있다. 재일동포 북송이 북일관계의 또다른 질곡이 돼버린 것이다.
2013년부터 2018년 11월까지 북한을 11번 방문해 이들의 삶을 기록한 저자는 "일본인 아내들의 삶을 증거로 남겨두고 싶다"며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그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로 취급될 것"이라고 했다. 저자의 말대로 60년째 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와 표정, 분위기를 선입견없이 담아내려 애쓴 흔적이 느껴진다. 저자의 말 추가.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람 하나하나의 인생은 평등하고 둘도 없는 것임을 취재를 통해 강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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