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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오웰이 몸으로 쓴 '배반당한 혁명'

서의동 2021. 8. 14. 10:51

조지 오웰은 <1984>, <동물농장>로도 유명하지만, 그가 남긴 논픽션으로도 세계문학사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20세기 전반 영국 북부 탄광노동자들의 극한 노동을 취재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 직접 참전해 겪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카탈로니아 찬가>(정영목 옮김, 민음사)가 대표적이다. ‘발로 뛰며 쓴다’는 표현은 기자들의 공들인 기사를 표현하는 관용어지만, 오웰의 논픽션이야말로 온몸으로 쓴 르포기사이다.
 
오웰은 1936년 겨울부터 1937년까지 통일노동자당의 의용군으로 참전해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대와 맞서 싸웠다. 20세기 전반 혁명의 이상에 달뜬 젊은이들이 유럽 전역에서 스페인으로 몰려 들었고 오웰도 그중 하나였다. 스페인 내전은 사정이 다소 복잡했는데 프랑코에 맞서는 인민전선의 정부군에는 통일사회당, 통일노동자당, 전국노동자연맹 등 공산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 여러 정파들이 뒤섞여 있었고 노선 차이도 작지 않았다. 전쟁 승리를 위해 민주주의는 다소 희생할 수 있다는 공산주의 노선과 노동조합의 공장통제, 농업 집산화, 지방위원회(인민위원회와 유사하다) 등 혁명의 성취는 전쟁이란 이유로 후퇴되어선 안된다는 노선간의 대립이다.

친공산주의 계열인 통일사회당의 노선은 이런 것이었다. ‘현재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고는 다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중략) 우리는 농민에게 집산화를 강제함으로써 그들을 이반시킬 처지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편에서 싸우고 있는 중간계급들을 놀라서 달아나게 할 여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능률을 위해 우리는 혁명적 혼돈을 일소해야 한다. 지방위원회를 대신해 강력한 중앙정부를 가져야 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의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 내전을 사회혁명으로 바꾸려는 자는 파시스트의 손에 놀아나는 자이며,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반역자이다’(81~82쪽)

반면 오웰이 속한 통일노동자당의 노선은 다음과 같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파시즘에 대항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자본주의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며, 그 점은 파시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파시즘과 싸운다는 것은 한가지 형태의 자본주의를 위하여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싸우자는 것인데, 첫 번째 형태의 자본주의는 언제라도 두 번째 형태의 자본주의로 변할 수 있다. 파시즘의 유일하고 현실적인 대안은 노동자들의 통제 뿐이다. 이보다 낮은 목표를 설정하면 프랑코에게 승리를 넘겨주거나 기껏해야 뒷문으로 파시즘을 들여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83쪽)

결국 공산당이 통일노동자당을 트로츠키주의로 몰아 공격하면서 바르셀로나 전투가 벌어졌고 혼란의 와중에 오웰은 가까스로 탈출하게 된다.

오웰이 경험한 ‘노동자의 군대’는 아마 스페인 내전외에는 성립 불가능했을 군대였다. 장비는 형편없고(오웰이 지급받은 소총은 무려 1896년에 제작된 독일제 모제르 소총이었다), 병사들은 어중이떠중이였지만 계급없는 평등한 군대였고, ‘혁명적’인 규율은 예상보다 믿을 만 했다.

의용군 체제의 핵심은 장교와 사병간의 사회적 평등이었다. 장군에서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다. (중략) 사단을 지휘하는 장군의 등을 툭 치며 담배 한 대 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했다. (중략) 계급 명칭도, 계급장도, 뒤꿈치를 소리나며 붙이며 경례를 하는 일도 없었다.(40~41쪽)

‘혁명적’ 규율은 정치적 의식에 달려 있다. 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 의식을 확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연병장에서 사람을 자동인형으로 조련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의용군 체제를 비웃는 기자들은 인민군이 후방에서 훈련을 하는 동안 의용군은 전선을 지탱했어야 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의용군이 전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 규율의 힘 덕분이다. (중략) 처음 한동안 나는 무질서한 상황, 전반적인 훈련 부족, 명령 하나를 관철시키기 위해 때때로 5분 동안 논쟁을 벌여야 했던 일 등 때문에 경악했고 또 격분했다.(중략) 그러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들은 예상보다 뛰어난 군대였다.(42~43쪽)

경찰의 바르셀로나 전화교환소 점령으로 불거진 바르셀로나 시가전은 발렌시아 정부가 카탈로니아를 직접 통제하고, 의용군의 해체를 앞당기며, 통일노동자당을 탄압하기 위해 저지른 도발이다. 이 사건으로 무정부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간의 연대는 파괴된다. 당시 마침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던 오웰은 이 사건에 대한 언론들의 터무니없는 보도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 <데일리 워커>를 비롯한 당시 언론들은 통일노동자당이 ‘프랑코의 제5열’이자 파시스트와 몰래 동맹을 맺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음모라고 날조했다.

공산주의 매체들의 보도를 읽어가다 보면 그들이 사실에 무지한 대중을 의식적으로 겨냥하고 있으며, 편견을 심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215쪽) 이런 종류의 비방과 언론을 통한 공세, 그리고 그것이 보여주는 정신의 습관은 반파시스트 대의에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229쪽)

스페인의 통일노동자당은 공산당의 의도대로 ‘파시스트의 앞잡이’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스탈린이 지원하는 스페인 공산주의자들로서는 파시스트와의 전쟁 와중에 극좌 모험주의와도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을 좌시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관철하기 위해 언론들을 동원해 사실을 왜곡하고 날조함으로써 역사를 급변침시킨 일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당시 언론들은 팩트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기레기’식 보도를 일삼음으로써 공범이 됐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왜곡과 날조가 벌어졌는지를 오웰은 이 책 11장에서 당시 보도들을 상세히 인용해가며 하나하나 팩트체크한다.

스페인 내전에서 ‘스탈린주의’와 ‘전체주의’의 사악함을 뼈저리게 체험한 오웰이 <1984>와 <동물농장>을 쓰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