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럽의 펀드복지

서의동 2007. 11. 22. 15:06

마가렛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영국 전 총리. 20세기 중반이후 `늙은 호랑이'로 전락했던 영국이 21세기 강국으로 재기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영국 보수당 당수였던 대처가 1979년 5월 집권한 뒤 추진한 정책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광산노조와 1년반에 걸친 사투끝에 석탄산업 합리화를 강행한 일과 복지삭감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모델을 확립한 점 등이 가장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론 탄광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1990년대 영국 북부 요크셔 지방의 한 탄광노조 밴드를 소재로 한 영화 `브래스드 오프'(Brassed off)에서 본 실직광부들의 고단한 모습들이 생생했던 탓인지 `철의 여인' 대처와 영국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영화를 볼 당시가 외환위기의 암운이 몰려오기 시작하던 무렵인데다 막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영미식 신자유주의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자본주의'라는 생각들이 유포되던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영국의 펀드산업을 취재하면서 영국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게 됐다. 특히 사회보장 제도에서도 `삭감'일변도라기 보다는 `합리적 조정'쪽에 가깝다는 인상을 갖게 됐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산기반 사회복지'(Asset-based welfare)제도다. `자산기반 사회복지'란 쉽게 말해 국민 개개인이 주식-펀드투자나 저축으로 자산을 불려 스스로의 복지를 책임지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정부가 엄청난 세금을 동원,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의 생활을 지원해주는 방식의 복지모델이 재정난과 고령화 등으로 더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처정부는 집권이후 자동차업체인 재규어, 통신업체인 브리티시 텔레콤 등 거대 국유기업들에 대한 매각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이를 대기업 등에 인수-합병(M&A)시키기 보다는 국민들이 골고루 주식을 나눠가질 수 있도록 국민주 형태로 분산시켰다. 영국정부는 이어 국민의 주식투자를 진작하기 위해 1987년 이자및 자본소득이 비과세되는 개인종합금융계좌(PEP)제도를 도입했다. 

1997년 집권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대처의 정책을 좀더 가다듬어 `자산기반 사회복지'의 개념을 확립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어린이 펀드'(Child Trust Fund)로 불리는 개인저축및 투자계좌다. 이 펀드는 국민 모두에게 `자산축적을 의무화'하도록 한 독특한 제도다. 2002년 9월1일 이후 출생하고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어린이는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출생때와 만 7살때 각각 250파운드(한화 약 47만원)를 정부가 종자돈으로 준다. 저소득층 자녀는 250파운드를 추가로 더 지원한다. 부모가 어린이 펀드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대신 가입해주고 펀드투자로 얻은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이 펀드는 만 18세까지 돈을 입할 수는 있지만 어린이가 사망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돈을 뺄 수 없는 폐쇄형 구조여서 영국국민 전체가 `강제적'으로 18년에 걸친 장기투자를 통해 자산축적에 나서도록 하는 효과를 갖게 한다. 영국현지에서 만난 어린이 펀드 가입자들은 이 제도에 상당히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런 유형의 `펀드복지'시스템은 이웃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다양한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다. 

 

국가가 `알아서 다 해주는' 과거 복지국가의 이상은 이제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점차 퇴색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대로 된 사회보장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아쉽기 짝이 없지만 어쨌건 현실속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나가는 영국의 지혜를 배워볼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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