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제를 북돋우는 정치

서의동 2007. 12. 11. 19:00
주말에 할인마트에 가거나 홈쇼핑 채널을 지켜 보면 공산품 값이 의외로 싸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내가 최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산 여성용 방한코트의 가격은 고작 4만원. 어느 브랜드의 어떤 소재를 썼느냐가 중요하겠지만 디자인도 그런 대로 갖췄고 한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해 불만이 없다고 한다. 딸아이의 부츠도 2만5000원에 그럴싸한 물건을 인터넷에서 구입했다. 이 역시 저렴한데다 상품자체의 ‘사용가치’에 적합한 구색을 갖췄다.

물론 사교육비와 집값 등을 포함해 세세하게 따져본다면 지표물가와 체감물가는 차이를 보이겠지만 어쨌건 1980년대 이후 물가는 대체로 안정세를 보여 왔다. 본관로비 중앙에 ‘물가안정’ 글씨를 새겨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는 2.5~3.5%인데 2000년대 들어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근대화 초기인 1965~1970년대중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연평균 14%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저물가는 국내적 현상만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의 선진국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안팎, 개발도상국도 2001년 이후 5%대에 머물고 있는 등 세계적으로도 안정세가 지속돼 왔다.

저물가엔 여러가지 요인이 개입돼 있다. 우선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제품당 생산단가가 하락한 데다 경제의 글로벌화 진전으로 보호관세가 낮아지면서 국내외 기업간 경쟁이 격화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임금단가가 싸진 것도 한 요인이다.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저가상품을 세계에 공급하면서 중국발(發)‘할인마트 효과(SALE market EFFECT)’를 가져왔던 공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

어쨌건 우리 소비자들은 지난 20여년간 물가문제에 대해서는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고 견뎌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한국은행의 2008년 경제전망에 따르면 내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올해보다 0.8%포인트나 오른 3.3%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1월 생산자 물가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4.4% 올라 2년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물가는 더욱 심상치 않아 10∼1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대비 6.5%의 상승세를 보였다. 싼 임금을 기반으로 세계에 저렴한 상품을 공급해오던 중국이 소비의 주체로 변신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국제유가 급등에 이어 곡물가격까지 꿈틀대면서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예로부터 물가는 민심과 밀접하게 얽혀 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휩쓴 초(超)인플레이션이 독일에서 나치즘,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을 태동시키는 계기가 됐다. 중국에서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권하에서의 물가폭등이 민심이반을 부르면서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게 되는 원인(遠因)으로 작용했다.

대통령 선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서민들의 관심은 다음 정권에선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 건지에 쏠려 있다. 하지만 내년은 서민들에게 더욱 힘든 한해가 될 것 같다. 경제가 정치로부터 분리돼 가는 요즘, 새 정부라고 해서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하고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대외변수들이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도 이런 기대를 더 어렵게 한다. 하지만 경제에는 ‘심리’라는 영역도 있다. 경제주체들이 새 희망을 안고 송구영신(送舊迎新)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경제를 북돋우는 정치가 이번 선거로 등장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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