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마사히데(大田昌秀) 전 오키나와현 지사는 지사가 되기 전에 오키나와에 관한 여러가지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긴 석학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분이 컨퍼런스가 끝난 뒤 몇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중 기억나는 대목은 이런 겁니다.
"오키나와는 1945년 이후 50년대 초반까지는 미군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미군이 오키나와 전투당시 양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오키나와말을 쓰는 젊은 세대들을 구출대로 동원했는데 만약 이들 구출대가 없었다면 오키나와 양민의 희생은 3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반면 일본군들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오키나와 말을 쓰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만약 쓰면 스파이로 몰아 처형하기도 했다."
사진은 오다씨가 미국 문서보관서에서 찾아낸 태평양전쟁당시 문서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오키나와 사령부의 우시지마 미쓰루(牛島滿) 사령관이 오키나와 현지 학도병들에게 유격전을 하도로 지시하는 훈령입니다. 이 훈령은 1945년 6월18일에 발령된 것인데 당시 시점은 일본군이 괴멸위기에 처해 학도병을 해산하던 시점입니다. 겉으론 해산을 명령하면서 또다른 비밀 훈령을 내려 유격전을 이어갈 것을 지시했다는 문서가 확인된 것입니다. 오다씨는 "이 문건으로 미뤄볼 때 집단자결을 명령하는 또다른 비밀문건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건 사진입니다.
오다씨와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본지에 칼럼을 2년간 연재해주신 개번 매코맥 호주국립대 명예교수에 회사를 대신해 감사패를 전달하는 행사를 간단히 가졌습니다. 제가 회사를 대리해 패를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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