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비스 리스크

서의동 2008. 2. 28. 18:50
 얼마 전 일본 출장 도중 도쿄(東京)의 한 비즈니스 호텔에 머물렀다. 중저가 호텔이라 방은 좁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만 아침 식사가 맘에 들었다. 식당은 방에 비해 제법 널찍하고 음식도 깔끔했다. 일본인 특유의 붙임성 있는 인사도 밥맛을 한결 돋웠다. ‘이국 땅에서 여독에 지친 여행자에게 숙소의 아침 식사는 든든한 위안거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몇해 전 한국을 방문한 한 일본인 지인이 한국엔 왜 아침 식사를 주는 비즈니스 호텔이 없느냐고 불평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 한국에도 비즈니스 호텔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엔 아침을 주는 호텔이 제법 눈에 띈다. 하지만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일본 정부기관의 한국사무소에 근무중인 한 일본인이 지난해 서울 종로의 한 비즈니스 호텔에 묵었는데 방도 널찍하고 비즈니스 업무공간이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아침이 주스와 빵 정도의 허전한 상차림이라 실망했다고 한다. 그나마 중저가의 비즈니스 호텔은 몇 안되고 대개 특급호텔과 모텔로 양분화돼 선택의 폭이 아직도 좁다.

 부족한 것은 호텔 서비스만이 아니다. 시내에서 공항버스를 타본 이들은 알겠지만 언제 버스가 올지 가늠하기 힘들다. 버스 정류장 안내판에는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는 정도만 쓰여 있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승객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염없이 대기하는 버스들도 다반사다. 공공적 서비스마저 이처럼 ‘예측불허’란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은 서비스 리스크가 높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 ‘서비스 리스크’는 관광쪽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단골 정비업소가 없을 경우 자동차가 고장나면 겁부터 내는 이들이 많다. 지불하는 가격만큼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 정비료가 어떤 근거로 산출되는지 알기 어려워 항상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서비스가 표준화돼 있지 않기로는 이용업소도 마찬가지. 머리를 잘못 깎아 낭패를 봤다는 이들이 가끔 있는데 업소에 가면 대개 머리 깎은지 얼마나 됐는지 물어보고 눈대중으로 가늠해 깎는다. 단골 가게가 없는 이들은 재수가 좋아 솜씨 좋은 이발사나 미용사를 만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일본처럼 손님에게 몇㎝나 자르고 싶은지 물어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한국경제가 단기간내에 제조업 강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장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서비스 분야는 아직 갈길이 멀었다. 세계 1위의 상품이 제조업 분야에선 여러해 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서비스쪽에서 세계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 국민이 지난해 해외여행과 유학·연수비로 쓴 돈은 무려 208억9000만달러. 제조업에서 벌어들인 ‘국부(國富)’가 줄줄이 외국으로 새고 있는 셈이다. 휴가만이라도 저렴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해외에서 보내겠다는 그들을 탓하기도 어렵다. 해외로 나가는 내국인을 막을 수 없다면 외국관광객이라도 늘려야 하지만 답보상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관광수지는 101억3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일중 ‘서비스의 선진화’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다. 투자를 늘리고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소비자들이 지불한 가격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서비스의 표준화와 규격화는 물론 종사자의 의식변화까지 동반해야 하는 만큼 정부가 관련 협회 등과 협력해 추진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서비스 리스크’를 줄이는 일은 국가적 어젠다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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